[뉴스룸 레터] 이게 아닌가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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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니구나 싶은 모양입니다. 영국에서 EU 탈퇴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오는 걸 보니 말입니다. 국민투표를 해놓고 뒤늦게 물리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합니다.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하며 스스로 놀라기도 한답니다. 충분한 정보와 지식 없이 분위기와 감정에 편승해 표를 던지는 유권자가 적잖았다는 뜻입니다. 중우(衆愚)정치의 폐해가 하필 근대 민주주의의 본산인 영국에서 나타났습니다. 이게 다른 나라에게 반면교사가 될지, 불쏘시개 역할을 할지 불분명합니다. 분명한 것은 국민투표를 물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번 투표엔 영국사회의 격차와 불평등, 그에 대한 불만과 갈등이 표출됐다고 합니다. 글로벌리즘에 대한 반발이자 역류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글로벌화는 국가간 불평등을 완화시킨 반면, 특정 국가 내부의 불평등은 심화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다 국내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글로벌화에 제동을 걸게 된 것이지요. 요즘 서구 도처에서 대두한 신고립주의, 또는 보호무역과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신중상주의가 그런 현상입니다. 이게 과연 21세기의 대안이 될까요. 국제적 불균형이 심해진 뒤엔 또 어떤 역풍이 불어닥칠지요.

국내에선 두 야당 대표가 국민에게 사과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은 가족 채용으로 물의를 빚은 서영교 의원 문제에 대해, 국민의당 안철수는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대해서입니다. 야당 고유의 도덕적 우월성을 상실할까 우려하는 눈치인데, 그 우월성은 이미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더민주당은 서영교의 문제를 알고도 공천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 정도야 오차범위 아니냐, 하며 안이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헐거운 윤리감각으론 신뢰 회복이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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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역시 조직적 개입이 어느 수준으로 이뤄졌는지 밝히기 전에는 사과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김종인은 “도덕적 불감증을 그냥 지나갈 수 있다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국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늦었지만 맞는 말입니다. 더민주당뿐 아니라 여야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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