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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세균 천지 목욕탕, 억눌린 여성…생생하게 되살린 폼페이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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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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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베이,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
메리 비어드 지음
강혜정 옮김, 글항아리
588쪽, 2만8000원

2000년 전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의 유적들은 발굴 200년이 지나도록 현대인들을 매료시킨다. 이 비극의 고도(古都)에 가면 폼페이 시민들의 절망과 함께 그들의 일상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잿빛 화산재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보낸 유적들은 당시 로마인들이 어떻게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슬퍼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메리 비어드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 그리스·로마 연구자다. 기존 연구서들은 대개 화산 폭발 당일 얼마나 극적인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저자는 폼페이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로마인들의 삶을 카메라로 찍어 보여주듯 만사를 세밀히 설명하고 있다. 부자와 서민 주택에서 시작해 도로·목욕탕·유곽 심지어 무덤의 특징까지 짚어내 당시 삶을 짐작케 한다.

책의 훌륭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모든 위대한 것에는 전설이 서려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헛된 미신도 숱하다. 폼페이도 마찬가지여서 저자는 잘못된 속설을 여지없이 깨트린다. 로마인들은 목욕을 좋아해 위생적이었으며 여자들은 자유분방했을 거라는 통념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저자는 이런 허구를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부정한다. 효과적인 살균제가 없었던 탓에 로마의 목욕탕은 세균 천지였으며 여자들은 가정에 묶인 속박받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적 분석과 함께 저자는 위험에 처한 폼페이의 상황에도 경종을 울린다. 18세기 중반 발굴이 시작된 이후부터 이 도시는 인간에 의해 끊임없이 허물어지고 퇴색돼 왔다. ‘폼페이의 두 번째 죽음’으로 비유되는 이 같은 잘못은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무릇 사람 이야기가 빠진 역사책은 지루해지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로마인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것도 쉬운 문체로 썼다.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폼페이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책의 일독은 선택 아닌 필수다.

남정호 논설위원 nam.j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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