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의도 좋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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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백정란(서울YWCA이사)】IMF(국제통화기금)·IBRD(세계은행)서울총회를 전후해 서울, 아니 전국이 들썩거렸다.
몇천명이 내한했고, 어느 가게는 얼마의 매상을 올렸고, 모피는 몇십만달러 어치를 팔았으며, 누가 주최한 파티에는 소가 열마리, 양이 스무마리, 비용은 1억원 등등…. 이런 보도들은 우리 국민 대부분을 어리둥절케 했다.
왜 이렇게 씁쓸할까? 이런 모임이 유형무형으로 국가에 얼마만큼의 이득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주객의 원리를 전도하여 손님맞이를 너무 앞세우다 보니 외국 손님을 위해 우리가 사는지, 우리를 위해 관광객이 필요한지 근본적인 면에서 의문이 생긴다.
총회기간중 어느 날 아침 일찍 남대문 시장엘 나갔는데 노점상인들이 깨끗이 철시되어 있었다.
시장 점포 안으로 들어서니 확성기에서는 세계의 대단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이것도 고쳐라, 저것도 바꿔라…. 귀가 따갑도록 지시사항이 울려 나오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그 방송내용을 외국사람이 들을까 가슴을 졸였다. 어느 점포에서는 정작 사겠다는 외국손님은 점잖은데, 외국어 깨나 한다는 지성인(?)안내가 값을 깎고, 타박하고, 거드름을 떠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너무 슬프고 민망스러웠다.
한 집안이 잘 살려면 식구끼리 서로 돕고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어려운 형편에 이르면 진정으로 발벗고 도와줄 외국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외국 것이라면 사람·제도·물건 할 것 없이 모두 우월하다고 느끼며 자기 것은 모두 하찮게 여긴다면 구원은 없다.
나라의 체면도 중요하겠지만 한때 남의 눈에 잘 보이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실상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가난한대로, 초라한대로 정성껏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맞고 보살펴 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세계와 우리와의 관계를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세계속의 한국이란 특수성을 가지고 세계 대열에 참여해야만 조화를 이룰 것이다.
이젠 촌티나는 허세에서 벗어나자. 열등의식에서 오는 권위주의·형식주의도 벗어버리자. 자기의 핏줄을 깎아내리면서 까지 허세부리는 추태는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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