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 2035

자원봉사할 때도 예뻐야 합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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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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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균
JTBC 경제산업부 기자

‘청바지 입고서(헤이!)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세상이 올 줄 알았다. ‘DOC와 함께 춤을’의 가사에 맞춰 너도나도 관광버스춤을 추던 게 20년 전이니까. 하지만 청바지는커녕 조금의 일탈도 용납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우리나라 대통령을 이역만리 타국에서 만났을 때였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뉴욕 순방 일정. 나는 현지에서 일을 도울 인턴으로 뽑혔다. ‘용모가 단정’하지도, ‘예쁜 분’도 아니었던 내게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다. 대통령 내외가 호텔을 드나들 때마다 정문을 열고 닫는 것. TV로만 보던 대통령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없던 애국심도 생기려던 찰나,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신발이었다.

나는 뉴욕의 많은 직장인이 그렇듯 정장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그게 눈에 띄었나 보다. 대통령의 시선이 두어 번 내 신발을 훑고 지나가자 수행단에 있던 외교관이 나섰다. 내 오른쪽 발을 꾹 밟더니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너, 군대 갔다 왔다면서? 왜 이렇게 튀려고 하지? 돈이 없으면 싼 구두라도 사서 신어.” 아침 드라마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온몸에 땀 날 정도로 맨해튼을 달려 구두를 챙겨 왔다.

7년이 지났고 대통령도 바뀌었다. 취임식, 순방길 등 대통령이 참여하는 행사마다 패션 하나하나가 지면과 방송에 소개된다. 파격, 깜짝, 메시지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이제야 DJ DOC가 노래한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아요(이~히!).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내 개성에 사는 이 세상’이 된 느낌이다? 과연 정말 세상이 변한 걸까? 정답은 ‘농’(프랑스어로 ‘아니요’)이다.

한국은 여전히 용모를 따지는 나라다. ‘용모 중요>언어가 되는 분>예쁜 분’…. 이달 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방문 행사에서도 젊은이들에게 강요된 건 외모와 복장이었다고 한다. 봉사 정신으로 이력서를 낸 현지 유학생들에게 전신 사진을 요구했다. 통역을 맡았던 참가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오는데 나는 왜 예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남겼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쓰레기통을 나르던 백악관 청소부와도 주먹 인사를 나눈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 애플 신화를 만들고 떠난 스티브 잡스는 옷 고를 시간이 아깝다며 똑같은 옷차림만 고집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순방길에 인턴을 뽑는다면 저커버그와 잡스 모두 탈락이다. 최고지도자의 옷에 신경 쓰기보다 젊은이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날은 언제쯤 올까. 내 운동화가 밟힌 그날, 외교관이 되겠다던 나의 꿈도 접혔다. 오늘도 난 정장에 운동화 차림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손 광 균 JTBC 경제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