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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신의 한 수’가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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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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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피플&섹션 부장

그제 있었던 정부의 신공항 발표에 가정법을 적용해 보자. 먼저 가덕도가 선정됐다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까. 표 계산 등 정치적인 고려는 일단 배제하고 정책적인 측면에서만 보자. 떨어지는 접근성을 이유로 대구·경북 등 부산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거세게 반발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개항하더라도 가덕도를 외면하고 KTX를 이용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여행객의 증가도 예상가능하다.

김해공항과 가덕도 신공항 간의 노선 배분도 숙제다. 상대적으로 접근이 편한 김해공항에 가능한 한 많은 국제선을 존치하라는 요구가 주변 지역에서 빗발칠 수 있다. 이런 저런 가능성을 고려하면 가덕도 신공항이 당초 기대한 수준으로 작동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 밀양은 어떨까. 공사 과정에서 주변 산들을 많이 깎아야 해 환경 파괴 논란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큰 숙제는 김해공항 폐쇄다. 밀양 신공항이 자리 잡으려면 김해공항의 여객·화물 수송 기능을 다 가져와야 한다. 아닐 경우 현재의 광주공항과 무안공항처럼 기능이 분산돼 서로 부진의 늪을 헤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산 지역에서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극히 작아 보인다. 지루한 공방만 이어지고 텅 빈 공항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두 지역 대신 ‘김해공항 대규모 확장’ 결정은 크게 환영할 만하다. 골치 아픈 숙제를 다 피할 수 있는 좋은 수다. 김해공항은 위치 자체에 대한 시비가 없고 철도·도로 등 접근 수단을 강화하면 이용이 더 편리해진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사실 김해공항 확장은 영남권 신공항이 거론될 때부터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김해공항의 대규모 확장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신공항이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다. 그런데 이번엔 정부가 대규모 확장을 하겠다고 나서니 신공항 유치에 매진했던 지자체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하다. 애초 보다 적극적인 확장 검토와 추진이 없었던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이에 대해선 정부가 해당 지자체들에 명확히 설명하고 필요하면 사과도 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정부는 총 4조3900억원을 들여 3200m짜리 활주로 1개, 2800만 명 규모의 국제선터미널, 관제탑 등을 신설하는 내용의 김해공항 확장안도 발표했다. 마치 모든 계획이 다 확정된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서두르면 안 된다. 확장안에 대해 다시 꼼꼼히 확인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항만이 아니라 철도·도로 건설 계획 등도 고려해 항공수요를 재점검해야 한다.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제3차 국가 철도망 구축계획’만 봐도 전국이 고속·준고속철도로 촘촘히 이어진다. 여행객이 항공기 일정에 따라 김해 대신 인천공항을 택할 여지가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신공항 못지않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확장하되 자칫 과잉 투자로 이어지지 않도록 잘 따져보란 얘기다. 그래야 이번 선택이 비로소 진정한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강 갑 생
피플&섹션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