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진단·처방에 뿌리깊은 이견|대표연설에서 드러난 여야의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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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4일의 3당 대표연설에 나타난 민정 신민당의 현실진단과 처방을 보면 여야간 뿌리깊은 이견의 정도가 심상찮은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여야가 그렇게 판이한 발상법과 지향목표를 갖고있다면 국회 안에서의 대화나 논의가 과연 얼마나 유용할 것인가를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헌법문제만 하더라도 단순히 고치자, 안 고친다, 어떻게 고치자의 얘기가 아니라 야당은 직선제로 고치지 않으면 정권에 끝장이 난다고 극언을 서슴지않았고, 반면 여당은 고친다는 것 자체가 더 큰 불행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철벽으로 맞섰다.
야당은 매사의 처방전을「민주화」「개헌」에서 찾았고, 여당은 호헌이라는 대전제 위에 국가경영과 민생안정의 논리를 폈다.
굳이 여야가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이 있다면 이번 정기국회가 각기 정치적 목표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며 만약 여기서 밀리면 그 타격이 심대할 것이라는 강박관념 같은 것을 쉽게 느끼게 하는 점이다.
이런 배경에서 이민우 신민당총재는 지난 개원국회때와는 달리 시종 고수위로 공격을 퍼부었고, 노태우 민정당대표는 표현은 다소 부드러웠지만 확고한 방어 논리로 맞섰다.
공방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개헌과 평화적 정권교체 문제. 신민당은 개헌의 당위성을 현 정권의 정통성과 결부시켜 강경하게 주장하고 개헌특위를 들어주지 않으면 장외투쟁에 나선다는 종래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이 총재의 논리에 따르면 대통령직선제는 10·26사태이후의 국민적 합의로서 개헌은 곧 그 합의를 되찾자는 것이며 논쟁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투쟁방법의 선택만이 남아있는데 우선은 여당과 대화를 하겠으니 국회에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이것을 거부하면 국민에게 직접 의사를 묻겠다고 했다.
또 이 총재는 전례 없이 자극적인 표현으로 현 정권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 여당의 민주화의지 표명을 요구했다.
이 총재의 이같은 높은 수위는 개헌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하는 야권의 사기와 적극적인 정국대처를 위한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 현장에서 여당의 거센 반발을 산것만 보더라도 스스로 내세운「대화와 토론」분위기 조성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노 민정당대표는『이 헌정질서에 따라 국회에 들어온 정치인들이 이 헌법에 부여한 제반 권리는 향유하면서 이 헌법의 존재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심한 자가당착』이라고 당초 원고에 없던 내용을 추가해 반격을 가했다.
노 대표는 전두환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밝힌『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해 합혜적 권한을 다 행사할 것』이라는 강한 호헌의지를 뒷받침하는 선에서 논리전개를 했다.
현행헌법은 1인 장기집권이라는 쓰라린 헌정사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것이며 88년에는 반드시 평화적 정부교체의 전통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천명했다.
또 야당은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의석을 갖고있기 못하며 그런데도 개헌을 관철하겠다는 것은 불법적 수단을 동원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묻고 앞으로 3년 의회정치가 제도권 밖으로 흡입되어 가두정치화 할 때는 엄청난 불행과 후퇴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개헌은 들어줄 수 없으며 앞으로 3년간은 개헌은 제쳐놓고「공동운명자」의 입장에서「정부교체」와 88올림픽개최에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
결국 이같은 근본적인 시각차이가 이 신민당총재의 높은 수위를 시발로 대 정부질문 상임위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번 정기국회에서의 개헌논쟁은 여야간 대립을 한층 가중시킬지 모른다.
헌법문제뿐 아니라 국정의 다른 분야에 관해서도 여야간 시각차는 컸다. 우리의 외교환경이 어렵다는데는 여야가 견해를 같이 했지만 원인분석은 출발부터가 달랐다.
여당은 북한과 소련의 밀착, 북한내부의 동요, 선진국의 보호무역경향 등 환경적 요인을 중시한 반면, 신민당은 현정권의 독선과 지지기반약화가 대외교섭력을 약화시키는 만큼 민주화만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주장했다.
남북대화에 관해서도 여당은 북한의 이중적 대남행태를 경계하는 쪽으로 시선을 맞췄으나, 야당은 정부가 국민적 합의과정을 생략함으로써 남북대화를 정권적 차원에서 고려하거나 이용한다고 의심했다.
우리경제의 문제점이자 정책과제는 여야 모두에 의해 수출부진, 산업의 구조적 모순, 외채, 중소기업 및 농촌문제 등인 것으로 집약됐다.
민정당도 대기업에의 지나친 경제력 집중이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경제적 비능률과 사회적 갈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고 중소기업의 육성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농촌문제는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재평가할 것을 주장했고, 외채문제는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전 국민의 근검절약만을 강조했을 뿐이다.
반면 신민당은 지금의 경제상황을 미증유의 위난이라고 규정짓고 경제난제치고 정치권력의 과오로 비롯되거나 악화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단언, 정부 여당이 자신의 반민주성을 점진적으로 감소시켜나가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신민당은 사면·복권, 사법부문제, 중공전투기사건, 언론·학원문제, 노사문제, 박찬종의원사건 등에 신랄한 비판을 가했으며, 민정단은 한반도주변정세, 88올림픽의 중요성 등을 비종있게 다루었다.
여야간의 이 같은 깊은 이견이 앞으로 국회에서의 대화와 토론에 의해 얼마나 완화될 수 있을는지, 또 여야가 그런 노력을 얼마나 성실하게 할 것인지에 따라 정기국회의 양상이 결정될 전망이다.<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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