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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학경쟁력 죽이는 연고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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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대 등 전국 10개 국립대가 올해 교수 신규임용 과정에서 40건의 위법.부당 행위를 저지른 것은 한국 대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나 다름없다.

대대적인 개혁과 변화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해 몸부림치는 외국 대학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구태여 미국과 유럽 대학의 사례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중국의 베이징(北京)대는 졸업생이 바로 모교의 교원이 될 수 없도록 교수자격 기준을 엄격하게 변경하는 등 임용과 승진에 경쟁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일본의 국립대는 법인으로 전환해 자율경영체제를 확보하고 산학협동과 연구기능을 강화하는 데 여념이 없다.

우리 대학들은 어떤가. 대다수 교수가 연구보다는 학교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총장선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수채용 때는 학위논문 지도교수 심사위원 위촉, 같은 대학 후배 밀어주기, 임용 점수에 반영하지 않는 사기업체 보고서나 미발표 연구실적 인정 등 갖은 수법을 써먹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이번에 적발된 교수 채용비리 사례는 국립대에 국한된 것이지만 사립대의 경우는 더욱 심해 금품까지 오가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해 국.사립대 공채에 지원한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80%가 심사가 불공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업적과 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임용된 교수들이 학생들을 기업체와 국가기관이 필요로 하는 인력으로 양성하고 대학시장 개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교수 인력을 선발하는 데 학연.지연 등 부정이 개입해서는 국가경쟁력의 기반인 대학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는 채용비리의 사슬을 끊는 과감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학위 지도교수의 심사 금지를 명문화하고 채용비리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지원자나 심사교수를 파면하는 동시에 사법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고 명단을 공개하는 등 강경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에 앞서 대학사회에서 졸업생 채용만을 고집하는 순혈주의 등 패거리 문화를 청산하려는 의식혁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