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상화와 여야대응전략|묻어둔 불씨 많아 전도 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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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회기 90일 중 20일 동안이나 공전하던 정기국회가 10일 정상화됐다. 헛바퀴만 돌리던 국회가 굴러가기 시작한데 대해 대부분 우선 안도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다시 파행으로 치달을까 모두 불안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박찬종·조순형의원사건에 관해 더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합의함으로써 여야가 다시 국회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건처리문제를 덮어버렸을 뿐이지 해결을 하고 넘어간 것은 아니다. 국회밖에서의 대치를 일단 풀고 결전을 위해 국회안으로 대결의 장을 옮겼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기국회로 넘겨진 문제는 비단 박·조의원사건뿐이 아니다. 그간에 제기된 핵심쟁점들은 사실상 거의 대부분 정기국회로 미루어져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총선 후 여야는 세차례 국회를 소집했다. 40여일간 협상끝에 5월말 열린 개원국회는 선거에서 제기된 개헌·광주사태·사면-복권·학원사태·노사문제 등을 다루었지만 시끄럽기만 했을 뿐이다. 신민당이 제출한 개헌특위구성안은 제출만 되고 정기국회로 이월됐고, 광주사태 역시 정치쟁점으로서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7월에 신민당이 단독소집한 제126회 임시국회는 민정당의 불응으로 유산됐고, 8월의 소위 민생국회는 야당케이스의 국회부의장으로 내정된 유제연의원에 대한 전력시비로 추경안처리에만 그쳐 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 등은 다시 정기국회로 연기됐다.
그동안 여야는 의도대로건, 또는 부지부식간에건 이처럼 「뜨거운 감자」들을 모두 밀어둔 채 정기국회에 이른 것이다. 말하자면 핵심적인 문제를 비껴 지나오면서 현안의 본질적인 해결을 위한 대립도, 긴장해소노력도 모두 유예시켜 놓았다.
그러면서 민정당은 대표위원·사무총장·원내총무·국책조정위원장 등의 경질·보완 등으로 임전태세를 갖추었는가 하면, 신민당은 개헌추진본부구성·「정치일정」요구 등 대회전을 앞둔 나름대로의 진지구축작업을 착착 진행시킴으로써 긴장은 계속 고조돼 왔다.
결전전야 긴장속에 부스럭 소리만 나도 방아쇠를 당기듯 민정·신민 양당은 박·조의원사건에 부닥치자 소모전을 벌이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양당은 정기국회 때 노출되리라고 보았던 대화와 정치의 한계를 다소 앞당겨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번 정기국회에 산적한 난제처리의 전도가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제 박·조의원사건을 넘어 국회에 들어왔다고 해도 여야의 태도에 달라진 게 없다. 민정당의 이세기 원내 총무는 『모든 현안에 관해 잔재주를 피하고 정공법으로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강조한다. 협상과 타협을 잔재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헌법문제에 관한 한 민정당은 단호하다. 협상이나 대안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전두환대통령이 이민우신민당총재와 면담했을 때 『민주주의는 호헌』이라고 밝혔듯이 민정당은 「평화적 정권교체」와 「호헌」논리로 맞선다는 방침이다.
다만 협상에는 불응하더라도 논의만은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신민당이 제출한 개헌특위구성안도 논의를 할 수는 있지만 운영위에 계류시킨다는 전략을 짜놓고 있다. 부결시키고 싶지만 그럴 경우 야당을 원외로 몰게 된다는 고려가 있었기 때문에 계류방침으로 결정된 것 같다. 기본적으로 민정당은 12대 총선후 첫번째 정기국회인 이번 국회를 개헌회전의 시발로 보면서도 개헌논의는 가급적 억제하고 정책과 예산쪽으로 몰아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민당은 국회를 개헌정국으로 몰아갈 결심이 확고하다. 이미 신민당의 주사위는 던져진 셈이다. 금년중 여야개헌합의, 내년초반까지 개헌안마련 등 정치일정을 제시한 신민당은 1차적으로 이번 국회에서 특위구성까지는 성사시키겠다는 입장을 내세워 당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현재까지는 헌법문제에 관해 양당은 타협의 실마리를 전혀 보이지 않은 채 팽팽한 평행선을 달려왔다. 김동영 신민당 총무가 『신민당은 개헌투쟁을 전쟁으로 생각지 않는다』며 대화와 토론을 통한 개헌특위구성을 유도하고 있지만 개헌문제가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될 것으로는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고 있다. 결국 양쪽 기본입장이 맞닥뜨릴 공산이 크고 이 경우 예산안심의 및 여타 안건심의 등 국회운영에 주름이 오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정국추이와 방향도 가늠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사태가 주목되는 것이다.
개헌 이외에도 정국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도화선은 한 두개가 아니다. 학원안정법도 그중 하나다. 정부가 지난여름 국민적 합의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입법을 보류한다고 결정한 후에도 정부 여당은 계속 입법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최근 분위기로 보아 정부여당이 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잠재적 불씨로 남아있는 상태다.
정부 여당으로서는 여론의 역풍은 있었지만 학원안정법과 박조의원 사건 등으로 이미 적지 않은 「부수입」을 누린 셈이다. 야당의 행동반경을 이런 이슈로 묶어 개헌문제 등을 둔화시켰고 재야와 학원에 대해서도 선제하는 기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88년 봄까지의 장기적인 정국에서 볼 때 개헌논의 후계자결정선거 등 대체로 세차례 정도의 큰 정치적 고비가 흔히 예상되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는 내년 봄까지로 연결될 것으로 보이는 개헌논란 「라운드」의 시발인 셈이다.
다루어야할 현안도 많지만 특히 개헌고비를 현명하게 넘길 여야의 지혜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한남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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