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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조에와 정치자금, 그 비루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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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헌
이정헌 기자 중앙일보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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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헌
도쿄 특파원

일본에서 요즘 가장 ‘핫’한 정치인은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68) 도쿄도 지사다. TV와 신문을 보면 온통 그의 기사들이다. 2년4개월간 행정직·소방관·경찰관 등 공무원 16만5000명을 거느리며 1351만 명의 삶을 책임졌다.

월급 145만6000엔(약 1600만원)과 보너스 등을 합한 연봉은 2900만 엔(약 3억2000만원)으로 고액이다. 그런 그가 21일 자로 불명예 퇴진한다.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지 않고 공금과 정치자금을 물 쓰듯 쓴 것이 원인이지만 돈을 대하는 비루함 탓도 크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듯 당당했다. 1년간 48차례, 거의 매주 주말 관용차를 타고 도쿄 도심에서 100㎞ 떨어진 가나가와(神奈川)현의 온천 명소 유가와라(湯河原)의 개인 별장을 오갔다.

4000만원이 넘는 혈세를 교통비로 낭비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문제가 전혀 없다. 사무실을 겸한 조용한 별장에서 도민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며 일했다”고 변명했다. 위기 관리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지적엔 “지진이 발생해도 어디에 있든지 지휘만 잘하면 된다”며 큰소리쳤다.

파리·런던을 5박6일 방문하면서 수행원 등 20명의 출장비로 5억원 넘게 썼다. 워싱턴 출장 때는 각국 정상들이 묵는 백악관 근처의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투숙했다. 도쿄를 대표하는 지사가 2류 호텔에서 잘 수 없다는 이유였다. 비행기도 1등석을 고집했다.

참의원 시절에는 가족 여행 숙박비를 자신의 정치단체 자금으로 지출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사무소 관계자 등이 호텔 방에서 회의를 했다”고 둘러댔다. 사적인 식사 비용뿐 아니라 미술품 구입비, 만화책 등 책값까지 정치자금으로 결제했다. 대부분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정당교부금이었다. 민심은 등을 돌렸다. 더 이상 서민을 대표하는 지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마스조에는 궁지에 몰리자 ‘셀프 조사’를 감행했다. 도쿄지검 검사 출신 변호사 등에게 자신의 지출 내역을 검증하도록 의뢰했다. 일부 부적절했지만 위법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일본 정치자금법에 지출 규정이 없는 점을 노려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줬다. 여론은 들끓었다. “세금 낭비를 사죄하고 즉각 사퇴하라”는 요구가 잇따랐다. 2014년 도지사 선거 때 그를 지원했던 자민당과 공명당도 압박에 가세했다. 도의회에 불신임 결의안이 제출되자 그는 결국 사직원을 제출했다.

지난 4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존경을 받는 호세 무히카(80)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도쿄를 찾았다. 월급의 90%를 기부하며 검소하게 살아온 그는 “정치인의 생활은 그 나라의 평균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한없이 욕심을 부리고 아무리 있어도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무히카의 기준대로라면 ‘내 수중에 들어온 돈은 모두 내 돈’이라는 듯 세금을 낭비한 마스조에는 분명 가난한 사람이다. 그런데 쫓겨난 그의 퇴직금은 2200만 엔(약 2억4000만원)에 이른다.

이 정 헌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