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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의 눈빛에 담긴 아름다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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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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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총기 난사 테러를 겪은 미국 플로리다주의 올랜도. 30세의 흑인 여성 캐서린 로레스를 만난 건 지난 14일 저녁 시내의 잔디 광장에서였다. ‘하늘에서 편안히 쉬기를’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은 증오보다 목소리가 크다’ 등의 글이 적힌 종이와 촛불이 가득했던 광장의 추모 공간 한 편에서 로레스는 식수가 담긴 물병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 한 달에 몇 번씩 노숙자를 위해 광장에 나와 식사를 제공하는 자원봉사를 했는데 오늘은 추모하기 위해 온 이들을 돕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로레스는 “테러 희생자들이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보도를 접하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광장에는 서서 기도를 하고 있던 백인 여성 지닛 핼러웨이(36)도 있었다.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지를 묻자 핼러웨이는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위로를 받게 해 달라고 했다. 우리가 이 어려움을 이기도록 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핼러웨이는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며 “이곳에 나와서 상처받은 이들을 만나면 함께 기도해 주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다음날 오전 올랜도의 캠핑 월드 스타디움에선 테러 희생자들의 가족과 지인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스타디움의 출입문을 들어서는데 나이 지긋한 노인 한 분이 물병을 10여 박스 쌓아놓은 채 들어오는 이들에게 하나씩 권하고 있었다. 그도 희생자 가족들을 돕기 위해 나온 자원봉사자였다. 이곳에선 시청 직원들과 의료진이 희생자 가족들을 1대1로 상담 중이었다. 숙연하게 상담이 이뤄지는 가운데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들어오는 이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올랜도가 겪은 테러의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올랜도의 겉모습은 이젠 평상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아픔과 공포가 여전했다. 14일 밤 기자가 묵었던 호텔 로비의 작은 TV에서 “테러범이 총을 쏘면서 웃었다”는 방송이 흘러 나오자 이를 지켜보던 카운터의 여직원은 말을 못한 채 고개를 좌우로 젓기만 했다. 15일 저녁 들렀던 한인 식당의 주인은 “테러 이후 도시 전체가 심리적으로 자제하는 것 같다”며 “확실히 백인 손님들이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통과 상처의 뒤에선 작은 도움이 되려는 선한 노력들이 있었다. 물을 나눠주던 로레스나, 기도를 해주러 왔다는 핼러웨이나, 희생자 가족들을 안내하던 이름 모를 이들의 눈빛엔 이방인인 기자도 느낄 수 있는 연민이 담겨 있었다.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하며 그간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이 깨진 것도 많다.

의회 정치의 모범이라고 믿었던 미국은 여의도 뺨치는 붕당 정치의 현장이었고, 과거 우리가 통탄했던 지역 감정을 능가하는 흑백 갈등이 여전히 미국 사회 어딘가에 암덩이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나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배울 전범임에 틀림없었다.

채 병 건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