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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사행산업 규제하면 불법도박만 더 커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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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12면

김상선 기자

“합법도박은 세금이라도 낸다. 하지만 불법도박의 수익은 모두 범죄자들에게 돌아간다.”


함승희(65·사진) 강원랜드 대표이사는 불법도박을 형사 문제를 넘어 국부 유출,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불법 도박 근절 콘퍼런스에 참석한 함 대표를 만나 사행산업 규제 개선 방안 등에 대해 물었다.


-검찰 출신에 국회의원을 지냈다. 왜 불법도박이 근절되지 않는다고 보는가. “내가 검사 생활할 때인 20여 년 전부터 모든 범죄는 지하경제에서 시작됐다. 그때는 모두 뇌물과 탈세였다. 불법도박은 그때 이렇게 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법도박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최대 160조원으로 추산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북한이 돈을 위해선 마약뿐만 아니라 위폐도 만들기 때문에 해외에 불법도박 사이트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 이건 단순히 형사 문제가 아닌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다. 사행산업통합발전위원회는 허가받은 사행산업 기관들이 룰을 잘 지키는지 감독하는 기관일 뿐이다. 위원회가 단속기관이 될 수는 없다. 현 체제에선 경찰이나 검찰이 단속하는데 이마저도 인적·물적 제한 때문에 불법도박에 집중할 수 없다. 수사기관의 단속 외에 국세청이 나서 세원 발굴 차원에서 도박사이트를 적발해야 한다.”


-불법도박을 줄일 대책은 뭐라고 보는가. “사행산업 규제를 완화해 문을 넓히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자카드제 등 합법산업에 대한 규제는 오히려 불법도박을 더 기승부리게 한다. 이번에도 국회·감사원 등에서 출입자 명단을 달라고 한다. 그걸 내놔 신분이 드러나면 누가 오려고 하겠는가. 이들을 내쫓으면 도박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불법도박으로 간다. 따라서 허가된 사행산업에 대해선 영업적 측면에서 문을 넓혀 줘야 한다. 대신 벌어들인 돈을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지역, 폐광, 진폐증 환자에 대한 사후 관리 등에 사용되는지를 감독하면 된다. 지금은 규제 일변도로 가고 있기 때문에 풍선효과가 있다. 합법적인 부분을 누르니 불법도박이 늘어난다. 초기에 사행감독위원회를 두면서 감독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사이버 도박 등이 늘어나며 전부 관리가 안 된다. 미국은 주별로 사이버 도박을 합법화한 곳도 있다. 사감위·문화체육관광부 등을 중심으로 이제 관점을 달리해야 할 때다.”


-검찰의 원정도박 수사에서 기업 오너나 스포츠 스타 등이 걸려들었다. 일부에선 과한 규제가 해외로 나가도록 만들었다는 말도 있는데. “외국인이 우리 카지노에 와서 억대를 도박해도 문제가 안 된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이 마카오나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억대 도박을 하면 문제가 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외국에 가서 도박한 사람들을 조사하면서 강원랜드 얼마나 다녔나, 경마장에 얼마나 다녔나를 확인해 그것으로 상습성을 판단한다. 합법도박은 세금이라도 낸다. 경마는 말 산업 진흥에 도움을 주고, 강원랜드는 폐광기금을 적어도 1500억원, 관광기금을 1500억원 납부한다. 세금 등으로 5000억원을 낸다. 사회공헌기금으로 중독자 예방과 각종 행사 후원기금도 내고 있다. 허가해 놓고 자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면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없다. 애매한 상태에선 경쟁력이 안 생긴다. 카지노를 제외한 스키장·호텔 등 시설이 너무 좋다고 다들 말한다. 그런데 카지노만 가면 병자 같은 사람들이 있다. 세 겹 네 겹 서서 살벌한 분위기에서 도박한다. 강원랜드에서 그런 분위기를 피하려면 테이블을 100여 개 늘리든가, 인원을 300~400명 뽑아야 한다. 그럼 일자리를 창출할 뿐 아니라 자리 때문에 싸우는 어처구니없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테이블 수 규제, 1년 출입일수 제한 등 시시콜콜 규제한다. 규제 완화는 해외 원정도박에 따른 유출과 탈세 등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규제를 완화한다고 고객들이 불법자금을 갖고 강원랜드로 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현금화해 들고 올 수 있다. 우린 얼마 이상을 칩으로 바꾸면 의심거래라고 해서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이런 불법자금이 유통되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러면서 건전한 게임장이 되고 거기서 유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잔돈들이 많이 움직이게 해야 한다. 밤새도록 게임을 해도 몇 백만원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한다면 문제가 안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규제를 완화한다고) 불법도박을 하는 사람들을 100%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법자금 추적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해외에 나가거나 여전히 불법도박장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만이라도 규제를 완화한 강원랜드로 온다면 그만큼 합법화되고 탈세도 방지하는 것이다. 경륜·경마 스포츠로 국민 건강 증진, 이런 걸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돈이 많이 벌린다면 좀 더 나아가 통일준비펀드 마련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차피 마카오 등에 나가서 쓰는 돈이니 그렇게 모아 좋은 데 사용하면 되지 않겠나.”


-전자카드제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들었다. “강원랜드 출입할 때 주민증을 제출하라고 하는데 엄청난 규제다. 외국은 1만원씩 열 번 잃고 100만원을 딸 수도 있다. 그런데 위아래의 규제가 정해지면 딸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다. 노름하라고 열어놨으면 놀 수 있도록 해놔야 한다. 따는 것까지 규제하면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게 하는 부작용이 많을 것이다. 또 실명이 노출되기 때문에 전자카드를 추적하면 얼마를 바꿔 얼마를 잃었는지, 땄는지도 다 알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 같은 곳엔 이런 제도가 아예 없다.”


-전자카드제가 예방적 효과도 있지 않겠나. “도박의 본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전자카드 이용하는 곳에 올 리가 없다. 지금 15일만 다닐 수 있는데, 16일째부터 건전하게 지내느냐 하면 그럴 수 없다. 15일 도박장 왔으면 유병률이 있는 것이다. 다른 도박장을 찾는다. 가족들 입장에선 15일은 강원랜드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어디 가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처음엔 가족들이 출입을 제한해 달라고 한다. 6개월 정도 제한하면 나중에 가족들이 와서 제한을 풀어 달라고 한다. 그나마 위치라도 알 수 있는 곳이 강원랜드다. 과거에 이렇게 풀어준 사람 여럿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수십억원을 잃고 나중에 변호사를 세워 나를 왜 들어오게 했느냐며 소송을 냈다. 결국 강원랜드가 패소하고 그 후론 더 엄격하게 제한한다. 가족이 제한을 풀어 달라고 하는 현실, 이런 걸 알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강원랜드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현재 수입 1조6000억원 가운데 리조트 등에서 1000억원 정도, 카지노가 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금 구조로는 확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규제 완화를 통해 대중 게임장으로 변화할 수 있다. 앞으로 힐링 리조트로 변화시키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예술가들도 오는 동네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놀이시설이 부족하고 탄광도 방치돼 있다. 이것을 정비하면 좋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오이석 기자 oh.i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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