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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초등생, 학교 보건실서 동네의원 주치의와 상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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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3 면

‘병원에 가지 않고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는 원격의료 개념은 수십 년 전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선 올해 278개 병원 환자 1만여 명이 참여하는 3차 시범 원격의료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원격의료 본격 도입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1차 병원 죽이기’ ‘의료 민영화를 위한 꼼수’라는 반대 의견과 ‘원격의료는 복지’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의료 선진국의 원격의료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 하워드카운티를 찾아 원격의료 현장의 모습을 취재했다.


인구 30만여 명인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 하워드카운티 보건국은 2014년 8월부터 공립학교를 중심으로 ‘지역 기반 원격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러닝 브룩 초등학교 등 6곳의 공립학교를 이 지역 1차 개인의원, 2차 병원인 ‘하워드카운티 제너럴 병원’과 연결하는 서비스다. 학교 일정에 맞춰 1년 단위로 운영한다.


?절차는 간단하다. 병으로 학교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은 학교 간호사의 판단으로 조퇴하지 않고 원격의료로 의사 상담을 받는다. 결막염처럼 감염성이 있거나 의사의 의견이 필요한 증상이 주요 대상이다. 러닝 브룩 초등학교 간호사 크리스틴 셀프는 “하루 40~60명의 학생이 보건실을 다녀가는데 한 달 평균 원격의료를 이용하는 학생은 4~5명”이라며 “천식이 있는 어린이가 응급으로 원격의료로 치료한 적도 몇 차례 있다”고 밝혔다.


 상담은 평소 자신이 다니던 개인의원 주치의(미국 건강보험 대부분은 주치의를 지정하도록 한다)나 하워드카운티 제너럴 병원의 응급소아과 의사 중 선택할 수 있다. 학부모 동의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학교를 방문해 진료 때 아이와 함께 있지만 학교로 올 수 없는 학부모는 팩스로 동의서를 보낸 뒤 원격의료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진료 과정을 지켜본다.


?러닝 브룩 초등학교 토리 토드 교장은 “우리 학교의 경우 맞벌이, 한 부모 가정이 많고 60㎞ 이상 떨어진 버지니아주에 근무하는 학부모도 있어 원격의료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원격진료 받은 학생 93.6% 수업 복귀 부모가 일터에서 나와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워드카운티 보건국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원격의료 프로그램에 등록한 학생은 1111명으로, 지금까지 총 125회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병원에 가기 위해 조퇴하지 않고 보건실에서 원격진료를 받은 뒤 수업을 계속한 학생은 93.6%에 이른다.


 기술적인 부분은 어렵지 않다. 영상·사진·음성 전송 기술 등은 학교 간호사가 따로 교육을 받고, 의사는 전자처방전을 발급해 학생 부모가 선택한 약국으로 전송한다. 간호사 크리스틴은 “심장박동·체온 같은 기본 진찰 검사는 가능하지만 의사가 직접 환자 몸을 체크할 수 없어 진단에 다소 한계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워드카운티의 프로그램은 원격 기술을 이용한 의료 서비스지만 첨단 IT 기술을 크게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육·복지 성격이 더 강하다. 대상도 1, 2차 의료기관 중심이다. 한국 의료법 개정안이 도서·산간 지역 의료 취약층과 1차 의원급 등을 대상으로 한 것과 비슷하다. 하워드카운티 보건국 프로그램 담당자인 섀런 허브슨 간호사는 “IT시설, 의료진 비용 등으로 매년 1만6800달러(약 1980만원) 정도가 드는데 이는 보건국이 부담한다”며 “건강보험이 없는 학생, 불법체류 신분 학생 여부에 관계없이 프로그램에 등록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학생들이 진료를 받은 후 수업을 지속하고, 일하는 부모의 시간을 최대한 보장하는 데 있다”며 “불필요한 지역 응급실 이용률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해 봤다는 한 학생의 부모는 “아이가 조퇴한 뒤 병원에 갔을 때보다 자신이 익숙한 학교 내에서 원격진료를 받아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학부모 부담 줄고, 지역경제에 기여 간접 효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브라이언 위타크레 교수 연구팀이 2011년 미 중서부 인구 700~1만1000명의 24개 소도시에서 원격의료를 한 병원을 조사한 결과 지역경제에 한 해 약 2만~13만 달러(약 2300만~1억5300만원) 정도의 이익을 가져오는 것으로 분석됐다. 소도시 중심, 지역 기반 원격의료 모델을 잘 활용하면 취약계층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면서 1, 2차 지역 병원과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윈윈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접목해 원격의료를 하려면 보안과 규제완화 등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워드카운티 원격의료 프로그램 IT담당자는 “화상 진료를 위한 영상 기술, 환자 심장박동·체온 등을 측정하고 카메라와 오디오를 통해 신체 정보를 전달하고 이를 전자차트에 기록하는 기술만 있으면 기본 수준의 원격의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워드카운티 프로그램은 서류, 전자처방, 검사 주문 모두 국가가 요구하는 미국의료정보보호법(HIPAA)을 준수한다”고 밝혔다.


메릴랜드= 윤혜연 기자 yoo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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