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에 선거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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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워싱턴=장두성 특파원】12일하오 미상원 더크슨빌딩 215호실은 문자그대로 입추의 여지없이 방청객들이 들어선 가운데 이른바「젠킨스」법안이라는 섬유 수입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법안을 놓고 청문회가 열렸다.
이 청문회는 앞으로 3백건에 달하는 보호주의법안을 심의하게되는 가을의회에서 불어올 거센 보호주의 바람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에 큰 관심을 모은 것이다.
이 청문회를 앞두고 이를 주관하는 상원국제무역소위의「존·댄포드」위원장은「레이건」 대통령의 무역정책을 신랄히 비판했다. 그는『대통령이 자유무역주의자임을 자칭하면서 걸핏하면 무역전쟁이 촉발된다고 엄살을 편다』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 신발산업의 본거지인 미주리주 출신으로서 지난달「레이건」대통령이 한국산을 비롯한 신발류 수입규제를 거부한데 대해 크게 불쾌해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통과가 쉬운 섬유규제 법안에 신발규제 법안을 첨부시켜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4나라를 뽑아내서 대미무역흑자를 줄이지 않을 경우 25%의 부가관세를 모든 수입품에 물리자는 법안도 역시 미주리주출신의「리처드·겝하르트」하원의원이 공동제안자가 되고있다. 그는「레이건」행정부의 통상대책이 『「피터·팬」같이 천진난만한 것』 이라고 조롱하면서 보호주의 입법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할리우드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출신 「피트·윌슨」상원의원은 최근『한국이 미국영화 수입규제를 풀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수출을 봉쇄하겠다』는 엄포까지 놓고있다.
이와같은 압력은『한국이 시장개방을 않으면 특혜관세 (GSP) 품목을 줄이겠다』는 식의 과거의 위협을 넘어서 노골적인 보복을 무기로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새로운 현상이다.
의회쪽에서, 초반부터 이와 같은 격렬한 말의 포탄들이 터져 나오는 이유는 84년 1천2백30억달러로 신기록을 세웠던 미국 무역적자가 금년에는 1천5백억달러로 다시 기록을 경신하리라는 에고가 여론을 자극해서 정치 이슈화 된데서 비롯된다.
경제학자들이나 유력지의 사설들은 미국이 겪고있는 무역적자의 주인은 미국달러의 지속적인 강세현상, 미국 전통산업의 경쟁력 약화 및 미국의 주요 수출시장인 중남미가 외채 부담 때문에 수입을 크게 줄이고 있는등 주로 미국 자체에 있다는걸 지적해 왔다. 또「레이건」 행정부는 지나친 보호주의는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을 몰고온 무역전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의회의 보호주의 압력을 견제해 왔다. 가장 최근의 예가 지난달 신발류 규제조치를 거부한「레이건」대통령의 발표였다.
적어도 신발류규제 문제에 관한한 미행정부는「자유주의」원칙 외에도 실리면에서 의견이 양분되었었다. 미국 국내이익을 대변하는 상무·노무·농무성과 미무역대표는 규제를 옹호했고 외교관계에 불필요한 마찰을 꺼리는 국무성·중앙정보국·국가안보회의등은 온건론으로 기울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가을회기를 앞둔 의회는「레이건」대통령의 신발규제반대 결정은 자신들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라고 화를 내게 되었다. 25%부가관세율 안이 나왔을때 일부에서는 이것이 86년 중간선거와 88년 총 선거를 앞두고 행정부를 공격할 이슈를 찾고있던 민주당이 마련한 방망이라는 해석이 나돌았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공화당 쪽에서 동조자가 나오고있고 보호주의 법안 추진세력들 속에도 공화당의원들이 만만찮게 끼여들고 있다. 지금 기세로 보면 보호주의 입법활동은 양당간의 대결이기보다는 의회대 백악관의 대결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이와같은 대결을 피하고 보호주의 입법사태를 막기 위한 전략회의가 11일 백악관에서 열렸다.「레이건」대통령은 이날 상하원 공화당 중진들을 백악관에 초청하고 당정협의로 정부측 통상법안을 의회에 제출, 선제공격을 취하기로 합의를 봤다고「로버트·돌」공화당 상원원내총무가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지가『공격적 방어책』이라고 표현한 이 합의의 구체적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래리·스피크스」백악관대변인은 이 속에 덤핑·수출지원 및 미국특허와 저작권 도용등 분야에서 이루어지는「불공정거래」에 대한 미통상대표의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부통령도 샌프란시스코 연설에서 역시「불공정거래」를 강력히 규제하고 외국의 수출지원에 대해서는 미국도「불에는 불」식의 대응을 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레이건」대통령은 의회의 여름 휴회중 자기가 제의한 세제개혁안을 가을에 통과시키기 위한 여론설득활동을 시작했었다. 그러나 의회쪽의 보호주의 입법 바람이 거세지자 자칫 이 개혁안이 희생될 것을 우려, 내년 회기로 미룰 가능성까지 있다는 견해가 공화당 쪽에서 나오고 있다. 결국 이번 회기에는 보호주의 입법을 둘러싼 싸움에 전력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풀이가 된다.
당하는 쪽에서 보면 보호주의 입법을 하겠다는 의회쪽 움직임이나 이룰 견제하기 위해 정부쪽 법안으로 선제하겠다는 백악관측 움직임이 오십보 백보의 차이밖에 없는 것이다.
형식만 다르고 실질적 효과는 별 차이 없을듯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유대」를 일방적으로만 믿어온 지금까지의 순진한 상황판단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려야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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