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인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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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마을에 수목이 울창하면 인심이 좋은 곳이요, 나무가 적고 메말라 있다면 보나마나 사람 살곳이 못되느니라.』목공예가이신 나의 아버님의 생활철학이다.
산에, 들에, 마을에, 도시에, 집에, 잡초에도, 동물이나 사람의 모습에서도, 보이지 않는 인간의 상념이나 형체 없는 언동들도 오랜 세월의 누적 뒤에는 반드시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서 시각화되어지는 것이다. 마치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굳은 돌 위에 홈을 파듯이.
지난번 남북적회담때 자동차가 드문 평양거리에서 교통정리하고 서있던 여순경을 TV화면이나 신문에서 보았을 때 그는 언뜻 여배우 김지미를 연상시켜 주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미모인 그녀에게서 전혀 아름다음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뭐랄까, 삭막하다할지 김지미의 아름다움이 발산시켜주는 분위기가 제거된 느낌이랄까.
자연스럽지 못한 체제 밑에서 그녀가 그 나이 되도록 주입되었을 사상과 전쟁놀이로 인한 전투적인 적개심이 타고난 미모를 지배하여 미모와 모처럼 날씬하게 뻗은 몸매의 부드러움을 상실케 하고 있었다. 그곳의 산야엔 나무가 적더라 했다.
이번 여름, 동경으로 날으는 비행기 속에서 나는 우리와 일본 해안선의 모양새가 판이하게 다른 것을 발견했다.
붓으로 그린듯 유연한 긴 곡선을 긋는 일본 해안선의 아름다움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북해도로 이어진 여정에 비친 자연 또한 기름지고 수려했다.
대중교통 수단을 가급적 이용해서 들여다 본 동경이란 거대한 도시의 행정과 살림에서, 인연 있어 만난 일본인들을 통해서, 남을 보살피고 염려하는 세심한 배려와 정성, 그 사랑이 산천을 아름답게 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어느 나라나 음지와 양지가 있고 문제를 지니고 있으되, 그러나 적어도 남을 먼저 위할 줄 아는 마음가짐은 환경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힘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매연에 뒤덮이고 양보가 사라진 서울의 차도 위에서 이 상념의 힘이 어떻게 되는가 망연해지기만 한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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