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개방하면 금융시장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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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나라의 보험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조금도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필자가 알기로도 10년전부터 외교경로를 통해서 또 한미통상장관회의에서 끈질기게 논의되었던 현안이다.
다만 우리에게 충격으로 느끼게 한것은 우방인 미국의 대통령이 표적 1번으로 한국을 겨냥해서 미국보험시장의 50분의1밖에 안되는 우리 보험시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통상법을 발동하여 우리의 상품수츨에 제동을 걸겠다는 태도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AIG와 CIGNA등 2개의 손해보험회사가 지점을 설치하여 내국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으며 그 영역도 처음에는 화재·특종보험으로 제한되어 있었으나 해상·자동차보험등으로 확대되었으므로 손해보험의 경우 90% 이상이 이미 개방되어있는 셈이다.
「레이건」대통령이 지적한 화재보험은 손보시장의 10%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개방되지 않은 분야는 화재보험협회가 관장하고 있는 4층 이상의 고층건물과 아파트·공장등 이른바 특수건물의 보험풀로서 10억달러의 손보시장으로 볼때 4%내외의 영세한 시장이므로 개방하더라도 상징적인 효과밖에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연간 40억달러로 예상되는 생명보험시장을 개방할 경우 그 충격은 보험시장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금융시장 전반에 미칠 가능성이 크리라고 짐작된다.
왜냐하면 생명보험은 장기저축성상품이 대종을 이루고있어 민자동원과 자본시장의 중핵구실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현재 생명보험의 운용자산은 5조원을 넘어 은행예금의 5분의1수준에 도달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보험시장은 지난 82년의 금리인하이후 금리의 역마진, 높은 손해율, 과 당 경쟁으로 인한 코스트의 상승등 이른바 이중고를 겪는 가운데 3년동안 적자를 시현하였는바 그 누계는 2천억원을 초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보험의 국제무역에 해당하는 해외재보험에 있어서도 최근 5년동안 1억달러가 넘는 수지적자를 나타내고 있어 국제감각과 언더라이팅 (보험인도기술)면에서 아직도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측이 요구하는 대로 보험시장을 조기에 개방한다면 시장의 일부를 빼앗길 것이라는 안일한 실에 그칠 문제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한 모퉁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업계의 비관적인 관측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으리라고 본다.
문제는 개방이라는 실보다도 더 클지 모를 대미수출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국익이 앞선다면, 또 개방이라는 거센 물결을 막을 길이 없다면 이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 차선일 것이다.
우리의 대응책으로는 세가지 측면이 있으리라고 본다. 정부·기업, 그리고 국민의 자세다.
첫째 정부는 이미 연말까지 개방의 일정을 확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말하자면 청사진을 제시하고 시한을 정하여 닥쳐올 물결에 대비하자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다만 그 시기나 방법을 정함에 있어서 고려해야할 사항이 있다.
먼저 시기에 있어서 고려되어야할 사항은 우리 보험기업이 외국회사와의 경쟁을 감당할 수 있도록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래의 온상을 벗기고 자유로운 경쟁의 바탕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방법에 있어서는 호혜원칙에 따라 우리 기업이 미국으로 진출하여 대등한 영업을 할수 있도록 보장을 받아야 할 것이며 지점보다는 내국인과의 합작회사 설립으로 유도하여 자본과 기술의 제휴에 의한 이점을 살리도록 고려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둘째로 우리 보험기업은 개방에 대비하여 국제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개성 있는 상품, 저렴한 가격, 막강한 시장조직, 최상급의 서비스, 국제수준의 보험기술등 다섯가지 경쟁력을 갖춘다면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경쟁하더라도 승산은 항상 있는 법이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를 보자. 일본은 70년대에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방하여 내국회사 (42사) 보다도 더 많은 43개 외국회사가 영업활동을 하고 있으나 시장점유율은 2%미만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기업의 뛰어난 경영기술과 막강한 시장조직에도 원인이 있겠으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일본국민의 국산품애용사상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무역자유화가 확대되고 금융시장이 개방되더라도 소비자나 투자자인 국민이 국산품을 애용한다면 새 물결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특히 보험의 경우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선진국에서 개발된 상품을 우리의 기호에 맞도록 각색해서 얼마든지 판매할수 있으므로 외래품에 비교우위가 있는 경우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어떤 경제백서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성숙시킨 원동력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지식의 대중화이고 또 하나는 자유경쟁체제다.
국민이 슬기롭고 국내의 자유경쟁에서 이긴 기업이나 상품은 세계시장에서도 이긴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미 닥쳐온 국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혜와 강인한 체질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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