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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여성혐오 풀어낼 실마리를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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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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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감정 정치
임옥희 지음
도서출판 여이연
304쪽, 2만2000원

2015년 시리아로 떠난 ‘김군’은 “페미니스트가 싫어요, 그래서 IS(이슬람 국가)가 좋아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1970년대 이승복 소년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던 빨갱이 공포가 여성혐오로 대적 상대를 바꿨다. 임옥희(60)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이를 페미포비아(페미니즘 포비아의 줄임말)라 부른다. 미국의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도 페미니스트를 적대세력으로 삼아 백인 하층민의 울분을 돋운다. 페미니즘 혐오현상은 세계적인 추세처럼 보인다. 임 교수는 이를 과감히 한 줄로 정리한다. ‘그 해는 여성혐오가 시대정신이었다.’

‘여혐(女嫌)’이 시대정신이라면, ‘가모장제(家母長制)’는 이를 역으로 비튼 시대풍자다. 고용불안과 살인적 경쟁에 떠밀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경제적 공황 상태의 시민이 심리적 공황을 겪으며 드러난 것이 여성혐오라고 임 교수는 진단한다. 중세의 마녀사냥을 떠오르게 할 만큼 불안한 요즘 세태에 페미니즘은 어떻게 대처하며 인간성 회복의 새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임 교수는 페미니즘 연구의 역사가 우리보다 긴 서구 여러 이론가의 성과를 문학작품을 넘나들며 그만의 시선으로 소화해 풀어놓는다. 그 핵심어가 이 책의 제목 ‘젠더 감정 정치’다. “여성혐오가 폭발하면, 복잡다단한 이유들이 ‘마법적’으로 합류하여 여성 친화적 정동(情動)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혐오가 친화로, 증오가 사랑으로 가역적으로 변형되는 정동의 사회 심리적 공간에 주목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감정 정치이다.”(14쪽) 부제 ‘페미니즘 원년, 감정의 모든 것’은 자기 쇄신을 요구받고 있는 페미니스트를 향한 표어로 들린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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