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대생 연합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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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대·고대·연세대·성대·서강대·이대·덕성여대등 서울시내 7개대학생 2천여명은 5일하오4시 고대중앙도서관앞 광장에 모여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85년 2학기 민중·민주화운동 선언대회」 가진뒤 이중 6백여명이 고대중앙도서관에서 철야농성 했다.
이날 집회는 경찰의 현상수배를 받아오던 전학련 삼민투위원장 허인회군 (22·고대총학생회장·정외과4년)과 성대총학생회 사회부장 김봉환군 (21·교육학과4년)이 주도했다.
특히 허군은 토론회를 열기전에 경찰이 학교에 들어오면 분신자살하겠다고 온몸에 석유를 뿌리기도 했다.
철야농성을 끝낸 학생들은 6일 상오9시40분쯤 김성복학생처장의 『도서관건물 점거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큰 방해가 된다』는 설득에 따라 3백여명이 학생회관으로 농성장소를 옮겼으며 나머지 3백여명은 수업에 들어가는 등 일단 흩어졌다.
학교측은 교문 앞에 「타대생출입금지」란 공고문을 써붙였으며 교직원이 교문에서 학생증을 일일이 검사했다.
6일 상오 현재 수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한편 경찰은 5일밤 허군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다.
농성학생들은 도서관 1층 3개 열람실에 지역별로 나뉘어 1열람실은 고대생 2백명, 성대·덕성여대생 20명 등 2백20여명이 차지했고 2열람실은 연대·서강대·이대생1백50명, 3열람실은 서울대생 2백20여명이 각각 차지했다.
출입구에 의자를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벽에 「우리의 입장」「우리의 결의」등을 굵은 매직펜으로 종이에 써붙인 학생들은 6일새벽1시30분쯤 경찰기습에 대비, 열람실 의자· 테이블 30여개를 부숴 각목으로 무장하기도 했다.
그들은 준비한 빵과 우유로 저녁식사를 한후 도서관 1층 복도에서 전체토론회·노래자랑 등을 가졌고 새벽3시부터는 방별로 나뉘어 토론회를 열며 교대로 잠을 잤다.
농성에 앞서 5일하오 학생들은 선언대회를 갖고 「민중민주화운동 탄압중지」「학원좌경화 매도중지」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내시위를 벌였다.
허인회군은 「민」이라고 쓴 흰머리띠를 두르고 횐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으로 단상에 올라가 『상오7시 경찰의 경비망을 뚫고 학교로 들어왔다. 이자리가 여러분과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 뒤 온몸에 석유를 뿌렸다.
전학련대표들은 농성에 들어가기전 구속된 전학련의장 김민석군 대신으로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오수광군(행정학과4년)을 전학련 의장으로 선출했다.
5일 밤11시50분쯤 허군은 기자회견을 자청, 『전학련이 표방하는 삼민주의는 좌경·용공이념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허군은 또 6월초 수배 받은후 수유리·독산동·인천주안·부곡 등으로 거처를 옮기며 경찰의 추적을 피해 신분증 없이 돌아다녔다고 밝혔다.
허군은 5일 아침 자신만 아는 루트를 통해 학교에 들어왔으며 일주일전인 지난달29일 새벽에도 학교에 들어와 학생운동을 지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허군은 이밖에 6일의 집회가 끝난 뒤 자신을 정리하겠으나 아무런 저항 없이 경찰에 자진출두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성북경찰서 이정일서장등 경찰간부들은 5일 상오부터 비상대기하며 고대주변에 1천5백명을 배치했다.
수배된 허군이 집회를 주도하고 철야농성을 시작하자 경찰간부들의 표정은 굳어졌고 밤10시40분쯤 강민창서울시경국장이 고대 앞 지휘본부인 안동파출소에 나가 굳은 표정으로 상황보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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