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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법인세 실효세율 높인 뒤 세율 인상 논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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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야당의 법인세 인상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은 이달 초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높이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국회 원 구성 협상이 끝나는 대로 대기업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입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법인세 인상론의 근거는 ‘감세 무용론’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3%포인트 낮추며 투자와 고용 확대를 기대했다. 하지만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정부 곳간만 바닥났다는 비판이 커졌다. 지난 8년간 쌓인 재정적자가 200조원에 가깝다. 이로 인해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확산됐다.

하지만 법인세율 원상복구를 어렵게 하는 제약도 여럿 존재한다. 장기 침체에 빠진 현재의 경기 상황과 기업 증세는 박자가 맞지 않는다. 세계적으로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법인세율을 낮추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내린 나라(17개국)가 올린 나라(6개)보다 많다. 법인세 납부액도 늘고 있다. 법인세율 인상을 놓고 정치적 갈등만 커질 수도 있다.

현실적인 대안은 대기업에 대한 실효세율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과표 200억원 초과 기업의 실효세율은 17.9%로, 명목 법인세율(22%)보다 훨씬 낮다. 연구개발과 고용 촉진 명목으로 법인세를 깎아주는 세액공제 혜택이 주로 대기업에 돌아가고 있어서다. 대기업 공제액이 전체의 82%, 10대 그룹만 해도 60%에 이른다. 중견기업보다 대기업 실효세율이 더 낮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현재 법인세 논란의 핵심은 대기업의 과소 부담이다. 야당도 중소기업 부담을 높이자고 주장하진 않는다. 법인세 인상이라는 명분보다 실효세율 상승이라는 실리적 접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법인세율 자체를 올리는 건 그 다음 과제다. 대기업 실효세율을 높인 뒤에도 재정 악화와 양극화가 완화되지 않으면 검토해도 늦지 않다. 소득세를 포함한 전체 세제의 균형과 효율성도 따져야 한다. 야당의 현명한 접근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