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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성에게 안전한 오지 근무환경 조성이 우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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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남 신안군의 한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은 단순히 인면수심의 야만적 범죄로 격분만 하고 넘길 일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교사 지위에 있는 여성조차도 얼마나 위험에 노출된 환경에서 일하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여성이 일할 권리가 있는 만큼 사회는 여성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런 사회적 책임이 작동된 흔적이 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먼저 섬마을의 물리적 환경이 여교사에게 위험했다는 징후는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특히 피의자들은 범행 후 반성도 없고 자신의 DNA가 검출됐음에도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는 등 자신의 문제행동에 대한 자각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또 사건 이후 일부 마을 주민들이 한 방송에서 “젊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다”거나 “관광지 이미지가 나빠져 관광객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을 앞세우는 등의 발언으로 피해자의 상처에 우선 공감하는 공동체를 기대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줬다. 이렇게 일부 성규범이 희박한 이웃들이 여교사 주변에 살고 있었지만 관사는 CCTV도 담도 없이 외부로 노출돼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이곳뿐이 아니다. 한 교사는 신안군 다른 섬 지역에서도 관사를 침입하려는 흔적이 있어 교육청에 관사시설 보수를 요구했지만 무시당했다고 한 방송에서 밝혔다. 오지 근무 경험이 있다는 한 여교사는 “작은 학교라도 학교운영위원회를 만들라는 지침에 따라 학부모들에게 읍소해 만들면 이들이 지위를 이용해 교사들을 밤에도 불러내고, 술을 강권하는 등 갑질을 한다”는 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안전을 무시한 관사 시설, 현지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천편일률적 학교운영지침 등 후진 시스템이 여교사들을 위험에 내몰고 있는 것이다.

사건 이후 교육 당국이 내놓는 대책과 논의의 수준도 한심하다. 대책은 관사용 CCTV 설치와 여교사의 도서벽지 발령 자제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관사는 정비해야 한다. 하지만 여교사를 오지에 발령내지 않는다는 발상은 단세포적이다. 승진 가산점 때문에 오지 발령을 자청하는 여교사도 많고, 특히 초등학교는 77%가 여교사라는 점에서 현실적이지도 않다. 여교사의 발령 자제는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교사뿐 아니라 군인·공무원· 경찰 등 오지로 순환 근무해야 하는 많은 직종에 진출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여성들이 어느 지역에서라도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문화와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성규범 교육을 지역사회 곳곳에서 시행하고, 교육청 등 조직 차원에서 퇴근 후 여성 공직자들에게 사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규범을 만들어 전파하고, 남성 위주의 낡은 시스템을 고치고, 음주가 강요되는 회식문화를 자제하는 등 여성친화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 이번 성폭행 피의자를 비롯해 여성공직자에 대한 성범죄는 법정 최고형으로 엄벌해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