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예-느긋한 생활태도가 아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고전극에서 보면 주인이 하인을 부를 때 『아무개야-』하고 길게 늘이면 『네-이-』하고 끝을 올리는 긴 대답이 돌아온다. 모두가 한가롭고 태평하던 옛 풍속도의 한 장면이다.
이것은 소위 『하인을 부를땐 길게 부르고(장성환비), 걸음을 걸을땐 아무리 바빠도 신을 끌고 느릿느릿 걸어야 한다(능보예복) <양반부>』는 사대부 처신의 하나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하다가는 버스도 놓치고 인파속에서 뒷사람에게 뒤꿈치를 밟히기 십상이니 시대가 바뀌면 과거의 미덕도 악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불변의 것-. 비록 대륙남단에 토끼꼬리만콤 매달린 작은 땅덩이이긴 하지만 예부터 우리 민족성은 대국적인데가 있어 낙천적이고 너그럽고 조급하지 않아서 이른바 군자의 나라였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
이웃나라를 가리켜 『섬나라 근성』이니, 『단기』니, 『표한(표한)』이니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뒤바뀐것 같다. 장기간의 외국체류 끝에 귀국해서 느낀 것이 바로 이점이다.
너나없이 왜 이렇게 조급하고, 용서가 없고, 피해망상증이고, 불신풍토인지 모르겠다.
표 파는데나, 차 타는데나 타율이 아니면 줄서기가 어렵고 기회만 있으면 새치기하는 사람이 많은 풍토, 대로의 차로선에서 벌어지는 생명을 건 경쟁도 그 하나의 예다. 남의 나라는 어떤가.
동경에는 언제 가봐도 큰역의 플랫폼에 묵묵히 두줄로 늘어선 사람들을 볼수 있다. 화장실은 6, 7개건만 줄은 한줄뿐인 미국공항이나 백화점의 행렬들. 어느 화장실이 먼저 비든 차례차례 들어간다는 합리적 사고방식이다.
어디가나 『미안합니다』의 홍수, 같은 돈내고 탔으면서 빈자리에 앉을 땐 옆사람에게 『미안합니다』 허리를 굽히고 앉는 풍토, 식당에서는 20분이고 30분이고 조용히 기다리는 인내력.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주문하자마자 재촉하기 일쑤다. 몇해전 어느 직장인이 육개장을 시켰는데 뒤늦게 설렁탕을 가져왔다고 두들겨패서 어느 사환이 비관자살했다는 기사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왜들 이렇게 용서가 없고, 각박하고, 단기인가. 그래서 한국인은 어디를 가나 음성이 크고 요란하다. 『광에서 인심난다』고 했는데 우리는 아직 광이 비어서 일까.김용숙<숙명여대 문과대학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