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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사진으로 본 곡성(哭聲)과 다른 곡성(谷城)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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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으로 출장을 떠나기 전 날, 마침 영화담당인 후배 기자와 만났다.
자연스럽게 영화 곡성(哭聲) 이야기가 나왔다.

“천만 관객을 넘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영화입니다. 혹시 보셨어요?”
“못 봤어.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화제지?”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인데요.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그런데 혹시 곡성군수가 쓴 칼럼 봤어요? 요즘 SNS에서 퍼져나가며 화제가 되었어요.”

영화도 못 본 터에 군수의 칼럼은 금시초문이었다.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영화로 인해 지역 이미지가 나쁘게 비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위기는 기회다’며 역발상의 칼럼으로 분위기 반전을 이뤘습니다. 꼭 한번 읽어 보세요.”

다음날 곡성행 기차를 탔다.
군수의 칼럼을 읽었다.
제목이 ‘곡성(哭聲)과 다른 곡성(谷城) 이야기’였다.
『행여 '영화 곡성(哭聲)'을 보고 공포가 주는 즐거움을 느낀 분이라면 꼭 '우리 곡성(谷城)'에 오셔서 따뜻함이 주는 즐거움 한 자락이라도 담아갔으면 좋겠다』며 끝을 맺은 칼럼이었다.

이번 출장에서 해야 할 일이 영화와 비교하여 현재의 곡성모습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결국 사진으로 본 ‘곡성(哭聲)과 다른 곡성(谷城) 이야기’인 셈이었다.

저녁 무렵 곡성 역에 도착했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장미축제가 한창이었다.
오월의 장미, 상상만으로도 마음을 들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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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축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미리 도착해 있던 취재기자가 왔다.
구리 빛으로 그을린 두 사람과 함께였다.
군청 홍보실장과 홍보주무관이라고 했다.

곡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터이니 취재에 도움을 주려고 온 것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며 다음날의 취재 일정을 논의했다.
사실 내 기억 속의 곡성은 섬 같은 곳이었다.

유명 여행도시인 남원·담양·순창·구례·순천의 가운데에 위치했지만 여행의 오지였다.
영화로 인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터니 두 공무원에겐 곡성을 제대로 알릴 호기였다.
그러니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은 게 많았을 터다.
그 덕에 다음날 일정은 새벽부터 서둘러 돌아봐야 할 정도로 빠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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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간 곳이 침실습지였다.
사실 이번 취재와는 상관없는 장소였다.
곡성을 제대로 알리고픈 두 공무원이 이구동성으로 꼭 보라고 추천했기에 마지못해 들렀다.
설핏 낀 안개, 물인 듯 숲인 듯 고요한 습지에 하늘빛이 물들었다.
저 속에 수달, 삵, 흰꼬리수리가 노닐고 있다고 했다.
섬진강의 너른 품이 만들어 낸 습지, 언제고 따로 보러 오리라 작정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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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간 곳이 곡성군 구성~신풍 간 도로였다.
영화 속에서 종구 일행이 탄 차량이 사고 난 장면의 무대였다.
정상에서 길을 내려다보니 산 능선들이 운해를 품고 있었다.

군수의 칼럼이 떠올랐다.
‘길과 길이 만나는 곳에서는 사람도 서로 만나 소담한 마을이 만들어지고, 마을마다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우리네 이야기가 있다.’
길과 사람과 마을,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품은 운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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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를 속으로 들어갔다.
안개 낀 마을을 지나 다음 장소인 능파리의 청림문구사에 당도했다.
영화에서 종구(곽도원)가 딸 효진(김환희)에게 머리핀을 선물한 곳이었다.
꽃, 나무, 나비의 벽화가 그려진 동화 속의 장면 같았다.

문을 열고나오며 사진 찍는 것을 눈치챈 한 학생이 까르르 웃었다.
꽃 그림보다 환한 웃음이었다.
웃음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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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외지인의 집으로 묘사된 연반리의 폐가였다.
산길을 한참 올랐다.
알고서 찾아오지 않으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산 중턱에 있었다.
도대체 어찌 알고 예까지 찾아와서 영화를 찍었을까 싶었다.
잡초 무성한 폐가, 벌들만 윙윙거렸다.
길섶엔 찔레꽃이 지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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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군수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폐가로 안내했던 전임 이장(현 이장이 아니라 전임이라고 구태여 강조했다)이 입가심이라도 하고 가라며 팔을 끌었다.
지체할 틈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집 앞에 있는 앵두라도 따서 먹고 가라고 했다.
빈속의 앵두, 달기도 달았지만 그 마음씀씀이가 더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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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에서 유근기 군수와 마주했다.
영화의 초반부에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낚시를 하는 장소였다.
영화에서 관객에게 미끼를 던지는 장면이었다.

군수는 바로 그 장소에서 곡성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모델역할을 해야 했다.
그가 이번 취재의 미끼를 자처한 셈이었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고향이 될 곡성’의 미끼, 군수로서 그가 해야 할 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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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소는 경찰서와 그 앞 읍내였다.
영화에서 등장했던 경찰서와 정육점이 있는 곳이었다.
인구 3만의 읍, 조용했다.

한동안 있었지만 경찰서를 오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광주지방검찰청이 선정한 ‘범죄 없는 마을’의 60% 이상이 곡성에 있는 마을이었다”는 군수의 주장이 빈말은 아닌 듯했다.

이번 출장의 결과물은 지난 5월 28일자 신문에 【“영화 땜시 마이 떴제” 주말 곡성 인구보다 많은 4만 명 찾아】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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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월 31일 늦은 밤, 어느 공무원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를 접했다.
그의 이름도 없는 첫 뉴스였지만,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쳤다.
그가 바로 곡성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저녁을 함께하며 곡성을 자랑했던 양대진 홍보주무관이었다.

너무도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한동안 멍했다.
그는 군수의 칼럼이 화제라는 보도자료를 만들어 전국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숨은 주역이었다.

두어 시간의 만남 후 “꼭 곡성으로 놀러오십시오”라며 내밀던 손길,
그 따뜻했던 손길과 열정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곡성(哭聲)과 다른 참 곡성(谷城)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애썼던 양대진 홍보주무관의 영전에 졸작이나마 이 사진들을 바친다.

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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