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졌다 첫 홈런…오랜만에 활짝 웃은 ‘킴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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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김현수가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때린 뒤 홈에서 매니 마차도의 축하를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 [클리블랜드 AP=뉴시스]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그라운드를 내달렸다. 공을 때린 뒤 110m의 다이아몬드(베이스 4개)를 18초 만에 뛰었다. 메이저리그(MLB) 1호 홈런을 터뜨린 김현수(28·볼티모어)는 세리머니를 할 여유도 없었다. 홈을 밟은 뒤 매니 마차도(24)가 손을 내밀자 잠시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17경기 54타석 만에 담장 넘겨
맞추기보다 노려치기로 강한 타구
평균 타구 속도 151㎞, MLB서 17위
현지 언론, 킹콩 빗대 ‘킴콩’ 새별명

김현수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자 입구에 서있던 벅 쇼월터(60) 감독은 물론 동료들이 그를 모른 척 했다. 김현수가 헬멧을 내려놓을 때까지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김현수가 눈치를 보는 순간, 볼티모어 선수들이 해바라기씨를 뿌리며 요란을 떨었다. MLB 첫 홈런을 축하하는 독특한 ‘왕따 세리머니’ 였다.

김현수는 30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전에서 4-4이던 7회 제프 맨십(31)의 투심패스트볼(시속 148㎞)을 잡아당겨 오른쪽 펜스를 넘겼다. MLB 데뷔 54타석, 17경기 만에 나온 첫 홈런이었다. 볼티모어가 6-4로 이겨 김현수의 홈런은 결승타로 기록됐다. 김현수는 “안 넘어갈 줄 알고 열심히 뛰었다. 항상 준비하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감은 있다”며 활짝 웃었다. 3타수 1안타(1홈런)·1타점·1볼넷을 기록한 김현수의 타율은 0.383가 됐다.

| 왜 아무도 축하 안 해 주지?
잠시 뒤 모두 몰려들어 “와”
MLB식 첫 홈런 축하 세리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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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아웃에 들어와도 동료들의 반응이 없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김현수(위 사진)와 잠시 뒤 축하해주는 동료 선수들(아래). [사진 볼티모어 페이스북]

김현수가 환하게 웃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지난해 말 볼티모어와 2년 총액 700만 달러(약 83억원)에 계약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면 실패한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김현수는 3월 시범경기 시작과 함께 24타석 무안타에 그쳤다. 그러자 볼티모어 구단이 계약해지 가능성을 언론에 흘렸다. 김현수가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행사해 MLB에 잔류하자 개막전에서 일부 홈 팬들은 야유까지 퍼부었다.

김현수는 4월에는 주당 한 경기 정도만 뛰었다. 그래도 김현수는 기다렸고, 준비했다. 5경기 결장 후 지난 26일 휴스턴전에서 김현수는 2루타 2개 포함, 3안타를 날렸다. 마침 시범경기부터 맹타를 휘둘렀던 경쟁자 조이 리카드(25)가 부진에 빠졌다.

김현수를 기용하지 않았던 볼티모어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를 달리다 2위로 내려갔다. 그러자 기류가 바뀌었다. 쇼월터 감독은 “타율 4할을 치는 선수(김현수)를 뺄 이유가 없다. 나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며 김현수를 최근 5경기 연속 선발로 내보냈다. 타순도 9번→8번→2번으로 올라갔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김현수는 놓치지 않았다. 공을 맞히는데 그치지 않고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돋보인다. MLB 스탯캐스트에 따르면 김현수의 타구 속도는 평균 시속 151㎞로 메이저리그 평균(143㎞)보다 빠르다. 규정타석을 채운 MLB 타자와 비교하면 17위에 해당한다. 첫 홈런의 타구 스피드는 시속 174㎞나 됐다.

스프링캠프에서 김현수를 만난 김용달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은 “ 라인 드라이브 홈런은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고 노려친 결과로 보인다. 이런 타격으로는 헛스윙이 늘어날 순 있지만 강한 타구는 더 많이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볼티모어 지역매체 MASN은 “김현수가 완벽한 타이밍으로 첫 홈런을 터뜨렸다. 이제 김현수를 ‘킴콩(Kim Kong·김현수+킹콩)’이라 불러야 할 듯하다”고 밝혔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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