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뭘압니까"별의견없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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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학의 방학과 함께 시작된 더위가 경찰의 학원수색·심민투수사발표 초복을 지나 법무장관·서울대총장의 전격 경질, 민중미술 민중교육수사의 중복으로 이어지다「학원안정법」으로 절정의 말복을 치닫는 느낌이다.
가을이 온다는 입추를 지났어도 뜨겁기만한 삼복 열기에 사회는 휩싸여 오히려 달아오르는듯 싶다.
극은 극으로 통하는 탓인지 더위를 지나 추위로도 전파되는 듯한 열기. 정가도, 학원도 불안을 깐 긴장에 빠져들어 있다.
그런 가운데 곳곳에서 자기보안의 촉각들을 곤두세우는 모습이 확연히 두드러져 간다.
요이틀새 윤곽이 드러나, 온 사회와 시민의 관심이 쏠린 「학원안정법」에 각계의 의견을 듣기 위해 사회의 지도급 저명인사들을 접촉하면서 이 「명철보신의 몸사림」은 너무도 극적으로 전달되어 왔다.
-제가 월 압니까. 별 의견이 없습니다.
-할 얘기가 없습니다. 하고싶지두 않구요. 나는 좀 빼주십시오.
찬·반 어느쪽이든 글을 한편 써주십사하는 부탁에 전직총장님은 『지난 연말 나는 앞으로는 일체 사회적인 발언을 하지않고 입다물고 살기로 작정했소. 양해해 주시오』 오히려 부탁을 했다.
어느 법학자님은 『제발 나좀 봐주시오. 며칠있다 외국나갈일이 있는데 이런때 글썼다가 그것도 못가게 하려고 그럽니까』 농담처럼 진담을 했다.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김현직총장님은 끝내 사양했고, 어떤 법조인은 『거 제대로 싣지도 못할것 뭐 때문에 쓰려고 그러시오』신문 걱정을 먼저해줬다.
「민의」가 폭발하고 대화의 다짐이 무성했던 2·12총선이 불과 6개월전.
봄나무처렴 피어올랐던 민초들의 기대와 희망은 어느새「지식인의 침묵」으로 바뀌어 있다.
거의 예외없는 지도층 지식인들의 견해표명거절과 회피에 부닥치면서 기자는 우리사회의 정작 문제는 학원안정법이나 그밖의 집단·계층간 이해·의견의 충돌을 빚는 사안이 아니라 오히려 이지식인들의「침묵」고수자세가 아닌가 싶었다.
이들은 왜 침묵하는가. 할수밖에 없는 것인가. 해야만하는 것인가.
반응은 오히려 무명의 시민들이 확실했다.
이름이긴 어떤 학부모 단체가 뭐하는데냐는등….
그러나 전화를 건 시민은 익명이었다.
아무도 자기를 드러내놓고 말하려않는 상황에서 합의란 불가능할뿐 아니라 무의미하다.
정부는 「국민적합의」를 위해 이런 분위기에 먼저 유의해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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