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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릴레이] ⑮ 강민구가 윤화영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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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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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셰프

각 나라 음식에는 저마다 캐릭터가 있다. 예컨대 ‘일식’ 하면 장인(匠人)이 길쭉한 칼로 사시미(회)를 뜨는 모습이 떠오른다. 한식은 어떤 느낌일까. 많은 외국인이 양념 많은 김치와 불고기 등 바비큐 메뉴를 생각한다. 역동적이고 중독성 있는 이미지다. 다만 그게 한국 음식의 진정한 가치일까. 만약 누가 내게 한국 음식의 독창성을 묻는다면 나는 “계절을 존중하고 제철 재료, 특히 채소를 활용하고 즐기는 전통”이라고 답하겠다.

‘미쉐린 식당’서 실력쌓은 1세대
20년 간 미식의 최전방서
원칙 지켜온 후배들의 롤 모델

한국 맛의 기본은 장(醬)이다. 콩을 발효해 된장·간장을 만든다. 고추장도 채소를 발효시킨 것이다. 그걸로 나물을 무치고 장아찌를 담그고 국·찌개를 끓인다. 김치도 절인 채소를 발효시켜 만든다. 이런 특징을 고스란히 가진 게 사찰음식이다. 동물성 재료를 전혀 안 쓰고도 감칠맛을 낸다. 이런 사찰음식을 포함해 한식을 제대로 배우는 게 요즘 내 목표다. 한식의 특징을 ‘밍글스’만의 방식으로 변형해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

2014년 5월 ‘밍글스’를 열고 지난 3월 새 공간으로 이전하기까지 많은 선배 셰프가 조언하고 격려해 주셨다. 흔치 않은 여성 오너셰프인 김은희 셰프(‘더 그린 테이블’)는 자상한 누나처럼 내 고충을 들어주고 본인 경험을 얘기해 준다. 음식에도 그러한 자상함과 내공이 묻어난다. <본지 5월 9일자 20면 셰프릴레이 14회>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편이 나온다는 소식에 많은 분이 ‘밍글스’에도 기대하는 눈치다. 솔직히 신경 안 쓴다면 거짓말이다. 평가받는 입장에선 부담스럽지만 달리 생각하면 우리가 언제 여기까지 왔나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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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씨엘’의 디저트 ‘딸기 판나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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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화영 셰프

요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미쉐린 별 같은 건 딴 나라 얘기 같았다. 유럽 레스토랑에 밥 먹으러 갔을 때 그렇게 설렐 수 없었다. 환상과 동경 속 미쉐린 식당을 처음으로 직시하게 해 준 이가 ‘메르씨엘’(부산시 해운대)의 윤화영 셰프다. 윤 셰프는 프랑스 ‘르꼬르동블루’로 요리 유학을 가서 미쉐린 파인다이닝(fine dining) 레스토랑에 정식 채용돼 일한 1세대 요리사다.

2004년 즈음 윤 셰프가 인터넷 커뮤니티 ‘싸이월드’에 매일 올리는 음식 사진, 주방 풍경을 접하게 됐다. 처음 알게 됐다. 미쉐린 레스토랑이란 게 엄청나긴 해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곳은 아니구나. 좋은 재료로 진심을 다해 엄격하게 음식을 만들면 그것으로 평가받는 것이구나. 미식의 중심 국가인 프랑스에서 언어·문화장벽을 이겨 내고 현지 요리사들과 어깨 겯고 일하는 윤 셰프가 자랑스럽고 감사했다. 그때부터 내 꿈도 분명해졌다. 한국 음식을 한국 셰프로서 알리고 싶다. 일본 음식 아류로서 구별 안 되는 한식이 아니라 정체성과 색깔을 가진 ‘미식’으로.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가게 되면 ‘메르씨엘’을 가 보시라. 맑은 날 대마도까지 보이는 언덕 에서 통유리창 너머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한국 식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정통 프렌치의 격식을 지키는 ‘윤화영스러운’ 음식이 나온다. 미식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부산에서 꿋꿋이 원칙을 지켜 가는 선배. 지난 20여 년간 그랬듯이 지금도 그는 최전방에 있다. 


한 그릇의 음식에 담긴 인연과 철학, 셰프가 주목하는
또 다른 셰프를 통해 맛집 릴레이를 이어 갑니다.



정리=강혜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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