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무역마찰의 진원지 「실리콘 밸리」 대일 보복 무드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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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는 미일간 첨단기술 마찰의 진원지다. 바로 이 실리콘밸리에서는 지금 미국기업의 생산력 저하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가고 있다. 금년 일렉트로닉스제품의 대일 무역적자가 2백억 달러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애간장이 타는 미국기업들은 미 정부에 제재조치를 촉구하고있다. 미 반도체 공업회 (SIA)가 일본기업들을 제소한데 이어 미 전자공업회(AEA)도 강경한 대일 보복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로부터의 도전을 물리치려면 제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서비스경제를 지렛대로 한 미 경제의 확대 등을 이야기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달러강세의 시정도 순환론적 문제해결에 그친다. 약화된 미국의 국제경쟁력을 소생시키는 간단한 방법은 없다.』 실리콘밸리의 최대기업인 휴레트&패커드사의 경영계획국장 「알먼」박사 (정치학)의 말이다.
「알먼」박사는 미국산업의 경쟁력에 관한 대통령자문위원회 (위원장「영』휴레트&패커드사 사장)의 실무책임자로 금년 초에 보고서를 정리한 장본인.
「레이건」대통령이「굿좁」(훌륭한 업적)이라고 칭찬한 동보고서는 『60년이래 일본의 생산성 신장은 미국의 5배에 이르며, 최근 미국은 첨단기술산업 10개 부문 중 7개 부문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차례로 지적, 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체화되고 있음을 실증 해 보였다.
실제 GM, 휴레트&패커드 등 미국의 초우량기업들은 최근 2∼3년동안 생산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종업원의 종신고용보증과 TQC(전사적 품질관리)운동 등을 통해 노사관계의 개선, 노동생산성의 향상에 몰두하는 한편, CIM(컴퓨터로 움직이는 자동화공장)시스템의 도입을 목표로 생산의 자동화와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과의 경쟁력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 달러강세도 그렇고 아시아 여러나라의 추격도 있고 해서 80년에 74억 달러의 흑자를 올렸던 미국전자산업의 무역수지가 지난해 62억 달러의 적자로 전락했다.
「알먼」박사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지도자들은 미일간의 무역불균형의 진짜 원인을 알고있다. 그렇지만 전략산업인 전자 기기 분야에 있어서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84년에 1백 50억 달러에 이르렀다는 것은 어쨌든 너무 많다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기본적 인식이다.
특히 일본시장의 폐쇄성 문제를 보면 개별안건의 해결에도 몇 년이 걸리며, 게다가 일본정부가 소폭의 시장개방만을 반복하고 있는 점도 미국 측의 불만을 사서 감정적인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SIA의 「힝켈만」이사장은『반도체 마찰은 어제 오늘생긴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불황에 접어들면서부터 책임을 일본에 돌리고 있다는 식의 일본측 사고방식은 납득할 수 없다. 5년전부터 일본에 「바이저팬」정책 (일본제품을 우선적 구입토록 하는 정책)과 덤핑 등 두 가지 문제의 개선을 요구해왔다』고 말하면서 뿌리깊은 문제를 강조했다.
AEA는 5월 중순 일본에 경고를 한바 있다. 이사회에서 전원일치로 『다른 수단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 모든 외국에 대해서 미국시장과 동등한 시장개방을 요구할 목적으로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지지한다』고 결의, 미 의회 정부에 강한 압력을 넣기로 한 방침을 확인했다.
AEA 가입기업들은 오랫동안 대일 수출절차가 기준인증 등 복잡하기 이를데 없어 고심해왔다.
일본업계에서는 설마 제재조치까지 취하겠는가하고 생각하고있다. 그러나 미 의회에서 수입 과징금 부과 등을 내용으로 한 대일 보복조치법안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현재의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백악관과도 가깝고 실리콘밸리의 거물로 불리는 「패커드」휴레트&패커드사 회장 (미일자문위원회의 미측 회장)은 지난 5월에 다음과 같은 서한을 AEA에 보냈다.
『GATT(무역·관세에 관한 일반협정)체제 전체에 금이 가게 할지도 모르는 수입과징금보다는 일본의 통신전자기기에 대한 일시적 수입할당제가 현실적인 조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일본이 문제를 해결할 때 무조건 해제해야 할 것이다.』 미일간 고도첨단기술을 둘러싼 마찰의 심각성을 잘 대변해 주고있는 것이다. 【일본경제신문 7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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