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회 상시청문회, 헌법상 견제 권한 넘어서는 새로운 통제수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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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대상 소관현안 지나치게 포괄적…정부, 기업 업무차질 우려”

‘정책 중심 운영’ 대안에 대해선 “남용 우려 있는데 시행하기보단 남용 소지 없애야”

정부는 27일 오전 9시 서울청사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상시 청문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대통령 거부권)을 의결했다. 이날 국무회의는 아프리카 순방중인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재했다. 법률공판 129건, 재의요구안 1건을 심의 ·의결했다.

국회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청문회의 개최대상을 ‘소관현안의 조사’로 확대하고 ▶국민권익위원회의 고충민원 조사를 요구하고 ▶국민권익위는 조사 및 처리결과를 상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정부 법제처장은 국무회의 뒤 서울정부청사 본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헌법에 위배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국회법 개정안에서 신설하려고 하는 ‘소관현안 조사청문회’는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새로운 통제수단으로, 헌법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헌법이 부여하고 있는 국회의 견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란 해석이다. 증인 불출석시 처벌 규정 등 현행 국정조사와 동일한 강제성을 지니면서도, 소관현안 조사청문회를 더 쉽게 열고 제한도 두지 않았다는 점도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현안조사 청문회 신설=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새로운 통제수단 만드는 것으로 헌법상 근거 없어
현행 국회법은 주요 안건의 심사, 법률안의 심사, 국정감사 및 조사를 위해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대해 소관 현안에 대해서도 조사청문회를 하자는 것이다. 법제처는 국회가 신설하려는 소관현안 조사청문회는 헌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헌법은 국회가 행정부, 사법부를 견제하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나, 소관현안 조사청문회는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통제수단을 신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권력 분립이나 견제·균형이라는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회는 이를 국회의 입법자율권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입법자율권은 국회의 내부적 구성이나 운영에 대한 것이지 행정부에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자율입법권을 행사할 대상이 아니라는 게 법제처 해석이다. 또 개정안이 청문회에 불출석할 경우 처벌규정까지 만들어놓은 것도 자율입법권의 재량은 넘어선다고 봤다.

②현행 국정조사제도와 강제성은 동일, 개최는 더 쉬워…국정조사제도 유명무실화 우려
법제처가 헌법 위배 우려가 있다고 본 두번째 근거는 현행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정조사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단 점이다. 제정부 처장은 이를 ‘형해화(形骸化·앙상한 모습처럼 부실해졌다) 우려’라고 표현했다. 헌법 61조 1항은 국회가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한 국정조사법은 국정조사의 절차, 조사의 한계 및 주의의 의무를 두고 있다. 불출석 및 위증 시 처벌 규정도 있다.

현행 국정조사는 국회 제적위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로 가능하고, 국정조사계획서를 작성해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은 위원회 또는 소위원회의 의결만으로도 소관현안조사청문회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 본회의에 별도의 계획서 제출 없이도 의장보고를 통해 청문회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법제처는 “국정조사법은 청문회 수사중인 사건일 경우 국정조사청문회를 열지 않도록 하는 등 제한 조항이 있지만, 국회법 개정안에서 신설하려는 소관현안 조사청문회는 이런 제한도 없다”고 밝혔다. 지금의 국정조사와 똑같은 강제성을 가지면서도, 제한조항은 없고, 더 쉽게 개최할 수 있도록 요건도 완화했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국정통제수단인 국정조사를 우회하거나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헌법상 국정조사제도를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고 법제처는 판단했다.

③소관현안 지나치게 포괄적
법제처는 국회법 개정안에서 청문회 대상으로 하려는 소관현안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정부의 국정운영이나 기업에 과중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위원회 및 소위원회 의결만 있으면 상시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기 때문에 청문회 자료를 준비하거나 증언을 해야 하는 관계공무원이나 기업인들에게 심각한 업무 차질이 있을 수 있단 이유다.

제정부 처장은 “정책중심으로 청문회를 운영함으로써 청문회가 남용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남용의 우려가 있는 제도를 제한적으로 시행하기보다는 그 남용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런 정책중심의 청문회는 처벌규정까지 있는 청문회 제도를 활용하기보다는 현행 공청회를 통해서도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④주요 선진국에선 보기 드문 사례
청문회를 상시 운영하는 미국은 한국과 달리 헌법상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제도를 별도로 두지 않은 채 청문회를 통해 해당 기능을 수행하고 있단 것이 법제처가 든 주요 이유 중 하나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정감사와 국정조사에 더해 국회법에 따라 중요안건의 심사를 위한 청문회까지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소관현안 조사청문회까지 추가한다면 이는 선진국에서도 보기 힘든 2중·3중 통제수단이 될 것이란 취지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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