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총장, 제주포럼 만찬까지 늦추면서 대선 질문 일일이 답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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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와 관련한 발언은 대부분 은유적이고 우회적이다. 그럼에도 모든 언론이 ‘출마 시사’로 해석했다. 이유가 있다. 참석자들이 현장에서 받은 강한 느낌 때문이다. “내년 1월 1일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해 결심할 것”이라는 발언이 나온 건 지난 25일 제주롯데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임원진과의 간담회다. 지난 4월 관훈클럽이 요청해 성사된 이 자리는 당초 비공개 진행, 정치 관련 질문 자제라는 두 가지 조건이 달려 있었다.

“발언 확대 해석 됐다” 진화하면서
“통합하는 사람이 리더로” 또 제시
반 총장 부인은 대선 출마 반대
“이혼할 생각까지 하라고 말해”

하지만 막상 간담회가 시작되자 반 총장의 답변 태도는 거침이 없었다. 특히 던져진 질문에 대부분 답했다. “대통령을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지만 자생적으로 이야기가 나오는 데 대해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 “미국 대선 후보들도 70세, 76세 이렇다” 등의 발언은 그렇게 해서 나왔다.

간담회는 예정된 오후 4시보다 1시간45분 늦은 5시45분에 시작됐다. 터키에서 출발이 늦었기 때문이다. 오후 6시30분엔 제주포럼 참석자들과의 환영 만찬도 예정돼 있었다.

반 총장의 간담회 모두발언이 끝난 시각은 6시20분이었다. 만찬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시작되는 만찬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 짐 볼저 전 뉴질랜드 총리,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이 초대됐다.

하지만 이때부터 정치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반 총장은 일어서지 않고 일일이 답변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반 총장이 만찬 장소에 도착한 건 예정된 시간보다 40여 분이 지난 오후 7시17분이었다. 측근들도 예상 못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26일 조간신문 1면은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시사 기사로 도배됐다. 반 총장은 26일 전·현직 외교부 장·차관,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과 함께한 조찬에서 “어제 발언이 너무 과잉·확대 해석됐다”고 진화했다. 그러면서도 "분열시키는 사람이 리더가 돼선 안 된다. 국가를 통합하는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며 바람직한 국가 지도자상을 제시해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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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반기문 "총장 임기 종료 뒤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일 할 지 결심할 것"



반 총장의 대선 출마에는 가까운 걸림돌이 있다. 부인 유순택 여사 등 가족들의 반대다. 반 총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유 여사가 반 총장에게 ‘대선에 나갈 거면 이혼할 생각까지 하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며 “유 여사는 반 총장이 그동안 너무 몸을 혹사한 데 대한 걱정도 있고, 자신도 긴 외국 생활에 지쳐 임기가 끝나면 고국에 돌아와 손주들 재롱을 보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 총장의 동생인 반기상씨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선 출마 선언으로 보지 않는다. 저술이 될지 뭐가 될지 모르지만 걸맞은 일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화·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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