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환없으면 "지금이 회 먹을때"|전문가에게 들어본 비브리오 패혈증의 실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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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에 전남북지방 일원에서 11명의 환자가 발생해 그중 6명이 갑자기 사망한 패혈증 소동으로 생선·패류등의 시세가 폭락해 어민의 생계마저 심각하게 위협해 왔다.
한편으로는 이번에 발생한 비브리오 패혈증이 괴저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괴저병과 혼동을 가져다 주고 있기도 하다.
이와같은 사태는 이번에 발생한 비브리오 패혈증의 정확한 이해와 사전지식이 부족한데도 원인이 있지만 매스컴에서 너무 과대포장을 해서 보도한데도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면 우선 비브리오 패혈증이 과연 무엇인가부터 알아보자.
이 질환이 의학계에 정식으로 보고된 것은 1970년 미국루이지애나주립의대의「롤랜드」박사팀에 의해서였다.
물론 50년대부터 이 질환에 대한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7O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해안지방에서 이상한 괴저성 질환이 빈발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질환에 걸린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를 보면 대개 발병이전에 생굴요리 (서양인들은 생선회를 거의 먹지 않음) 를 먹었거나 바다낚시 도중 손이나 발에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사망자들은 대부분 간경변·간염등의 간질환을 앓았던 병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이와같은 양상은 회를 즐기는 일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그들은 우리의 경우처럼 떠들썩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 80년과 81년에 서을대의대에서 5명의 비브리오 패혈증 환자에대한 임상보고를 정식으로 했고 (4명은 사망), 우리대학에서도 작년에 2건의 비브리오패혈증사망자에 대한 임상결과 보고서를 학계에 제출한 바 있지만 그때는 조용하게 지나갔다.
고대의대의 환자는 각각59세와 48세의 중년남자들로 평소 회와 어패류등을 즐겼으며 간질환과 폐결핵등의 소모성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학술적으로 볼때 괴저병은 크게 감염성과 건성으로 나눈다. 이번의 비브리오패혈증은 「감염에 의한 괴저병군」에 속한다.
비브리오균중에서도 소금기있는 물에서 잘 서식하는 호염성 비브리오인 불니피쿠스·파라헤몰리티쿠스·알기노라이티쿠스등 3종이 패혈증을 일으킨다.
이 병에 걸리면 일반괴저병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다리부분에서부터 적갈색의 물집이 생겨 엉덩이·허리·어깨부위까지 옮겨가며 미열과 오한, 그리고 구토등이 반복되다가 2∼3일안에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밖에 혐기성 스타필로코커스균과 기타 세균에의한 가스형괴저병들도 감염에의한 괴저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괴저병이라 불리는 질환은 건성괴저를 말하는 것으로 대거 혈관폐쇄나 만성당뇨병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
혈관폐쇄에 의한 괴저병은 체내에 지방이 많은 사람에게 잘나타나는데, 만성혈전증세가 계속되다가 혈전이 쌓여 대동맥이 막히게 되면 신체의 말초부분부터 까맣게 타들어가는 질환이다.
발가락·손가락등에 마치 연탄가루가 박힌것처럼 시꺼먼 반점들이 점점 넓어지면서 피부괴사가 일어나는데 특히 발바닥등의 압력을 받는 부위가 심한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간염에 의한 괴저병처럼 체온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당뇨병성괴저병은 넓은 의미에서 혈관폐쇄괴저병으로 분류하는데 만성당뇨병으로 핏속의 혈당농도가 높아져 일어난다.
당뇨병성괴저도 역시 피부가 까맣게 썩어들어가는 증세를 보이는데 대체로 서서히 진행하다가 2차적인 염증이 생기면 순식간에 넓게 퍼져들어간다.
이와같이 건성괴저병은 성인병의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것이 통례로 세균감염에 의한 괴저병과는 엄격히 구분된다.
그러면 최근 문제가 된 비브리오패혈증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앞에서도 살펴 보았듯이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보면 평소 신체질병이 없이 건강했던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바꿔말하면 간질환이나 폐질환등으로 신체에 이미 이상이 있었고 그때문에 세균감염에 대한 저항력이 극도로 약해진 상태에서 비브리오균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은 것을 알수 있다.
최근 우리 피부과의사들은『요즘처럼 횟값이 쌀 때 실컷 먹어두자』는 농담을 주고받곤 한다.
건강한 사람들에게 세균이란 그리 크게 걱정할 존재가 못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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