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최경환·정진석 담판으로 집안싸움 막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기사 이미지

최경환

‘최경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파 수장 모여 당 정상화 논의
“정권 재창출 불투명 상황” 위기감
최경환 “정진석 체제 흔들면 안 돼”
미국 다녀온 뒤 친박 향해 신신당부
“청와대와 사전 협의 했을 것” 분석

2006년부터 친박근혜계 핵심, 경제부총리.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은 4·13 총선 참패 후 40일 가까이 침묵을 유지해 왔다. 지난주 당이 비상대책위원회조차 출범시키지 못하는 최악의 혼란을 겪을 때도 “개인 일정으로 해외에 체류 중”이란 얘기만 풍문처럼 들려왔다.

그런 최 의원이 지난 19일 귀국한 뒤 여의도 정치에 ‘숨은 중재자’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다녀온 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협곡인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이 때문에 당내에선 “최 의원이 생각을 정리한 뒤 자신의 역할을 새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기사 이미지

김무성

새누리당 정상화의 단초를 마련한 24일 ‘3자(김무성-최경환-정진석) 회동’은 정진석 원내대표가 전날(23일) 제안하면서 성사됐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물밑 움직임이 있었다.

최 의원은 지난 19일 귀국 직후 가까운 친박계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정진석 (원내대표) 체제가 흔들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최 의원이 없는 동안 친박계는 당 전국위원회(지난 17일)를 무산시키면서 정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겸직을 막았고,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원내대표를 다시 뽑자”는 주장까지 했다. 하지만 최 의원은 귀국하자마자 친박계 내부에 차오른 압력을 빼주는 작업부터 했다.

기사 이미지

정진석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최 의원은 정 원내대표도 따로 만났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최 의원은 “지금은 당을 수습하는 게 우선 아니겠느냐. 좋은 분을 모셔다가 비대위원장을 맡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런 ‘사전 정지작업’을 바탕으로 4·13 총선 패배 이후 41일 동안 지리멸렬한 당의 모습을 타개하기 위한 계파의 수장들의 ‘담판 회동’이 열린 셈이다.

이날 회동에선 비상대책위원장의 영입부터 정권 재창출을 위해 바꿔야 할 당헌·당규 조항들까지 폭넓은 대화가 오갔다. 이 중 비대위원장과 관련해서는 박상증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과 김희옥 전 헌법재판관 등 구체적인 ‘혁신형 후보군’의 이름까지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가 이들과 접촉해 결과를 나머지 두 사람에게 통보하면, 다시 합의를 통해 비대위원장을 선임하자는 원칙에만 합의하는 선에서 논의를 마쳤다.

당헌·당규 개정과 관련해서는 당 대표-최고위원 선거 분리제도 도입을 논의했다고 한다. 전당대회에서 2등을 한 최고위원이 1등을 한 대표를 흔들어 온 기존 전당대회의 악습을 막자는 취지에서 나온 얘기다. 힘이 약한 당 대표로는 19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치르기 힘들다는 데 3인 회동의 참석자들이 동의한 측면도 컸다.

정 원내대표는 “정권 재창출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존의 제도라고 해서 무조건 유지하려는 것은 ‘사치스러운 행동’이라는 점에 김 전 대표나 최 의원이 모두 동의하더라”고 전했다.

여기에 세 사람은 계파해체 선언도 하기로 합의했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모두 정권 재창출이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집안싸움’을 멈추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관건은 이번 합의에 청와대도 동의를 해줄 것이냐 하는 점이지만 최 의원이 미리 움직인 만큼 청와대와의 교감도 사전에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관련 기사정진석 “쓴소리만 담은 총선 백서 준비”



세 사람의 구상대로 갈등을 완전히 봉합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많지만 당 정상화 과정을 진행하는 와중에 새누리당은 두 달 뒤인 7월 말 이후 전당대회를 열어 새 리더를 선출한다.

최 의원 주변에선 그가 전당대회에 출마할 여지까지 닫아버리진 않고 있다. 이날 회동 전에 최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김무성 전 대표와 가까운 비박계 인사들의 대화를 인용해 “나더러 ‘(대선 경선에 출마하고)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김 전 대표가 대선후보 경선에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강조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필요하다면 전당대회에 출마할 수 있다는 뉘앙스다. 일종의 ‘킹 메이커론’이다.

남궁욱·현일훈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