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오대산 전나무숲길은 일주문에서 월정사 입구에 이르는 길이다. 수령이 수 십년 수 백년 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전나무숲길은 오대산의 월정사와 상원사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명소다. 관광객들은 전나무숲길을 걸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나무 사이로 이어진 흙길은 치유의 길이 된다. 매년 월정사 단기출가학교에 참가한 행자들이 이 길에서 삼보일배를 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18일 찾은 오대산 전나무숲길은 왜인지 낯설었다.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줄지어 선 전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못들었나? 여기가 아닌 다른 길인가?'하는 생각이 들지경이다. 길을 따라 계속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무성한 전나무는 나타나지 않았다.
국립공원 직원을 만나 “여기 전나무숲길이 어디있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이 길인데요!”다.
“전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곳은 어딘가요?”라고 또 묻고, “일주문으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라고 다시 대답했다.
서둘러 발걸음을 일주문으로 옮겼다. 바쁘게 좌우를 살피며 전나무를 찾았다. 얼마를 걸었을까?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나타났다. 톱에 잘려진 아름드리 전나무 무더기가 보였다.
전나무가 잘려나간 사정이 궁금했다. 국립공원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었다. 전화선 너머 직원의 대답은 이러했다. 지난 5월 2일부터 4일 사이 이 지역에 태풍급 강풍이 불었고, 전나무 몇 그루가 뿌리째 뽑히면서 길을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무를 잘라 옮겨 놓았다는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이전 전나무숲길 사진을 찾았다. 2002년에 촬영된 사진에는 전나무가 무성하다. 2010년에 촬영된 사진에도 비교적 전나무가 빼곡하게 서 있다. 그러나 2016년 5월 사진에는 활엽수들이 무성하게 자라 전나무를 가리고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추세라면 수십 년 뒤에는 '전나무숲길'이란 이름도 과거의 기억에만 존재할까 걱정된다.
숲길을 걸으며 만난 다람쥐는 아주머니가 주는 과자를 받아간다. 사람과 동물이 친구가 됐다. 딱따구리도 길 주변을 맴돌며 먹이를 구하고 있다. 평화롭고, 아름답고, 다시 걷고 싶은 길이다. 10년, 20년 뒤, 그리고 아주 먼 훗날에도 말이다.
글·사진= 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