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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샤 누나, 제가 에스코트할게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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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호 29면

큰딸이 그린 류더화의 그림. 아련한 눈빛이 살아있다

1913년 미국은 매년 5월 둘째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Mother’s Day)로 정했다. 이후 70개가 넘는 국가들이 위대한 모성애를 기리고 축하를 건네기 위해 비슷한 기념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는 한국의 어버이날과도 겹쳐 2배의 기쁨을 선사했다. 그래서 이번엔 한국과 말레이시아에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소회를 몇 자 적어보려 한다. 한데 갑자기 류더화(劉德華)나 장만위(張曼玉)에 대한 글을 쓰기로 약속한 사실이 떠올랐다. 이걸 어쩐담. 그렇다면 이 소재들을 연결해 봐도 재미있는 글이 나오지 않을까.


먼저 ‘화즈(華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처음 류더화를 알게 됐을 때 나는 그를 화즈라고 불렀다. 그가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금은 서로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사이기 때문에 편하게 영어 이름 ‘앤디(Andy)’로 부르곤 하지만 말이다. 그도 이제는 적응이 됐겠지만 영화 황제를 칭하는 애칭에 아이를 뜻하는 글자(孩子)가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실 나는 그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2003년 철도회사인 중화건강쾌차(中華健康快車)가 마련한 자선행사에서 주제가 ‘가향적용안수(家鄕的龍眼樹)’ 합창 작업을 함께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시 춘하추동 4계절을 소재로 곡을 썼던 나는 알란 탐·장쉐여우·청룽 등 4대 거성 중 앤디에게 가을 파트를 부탁했다. 그의 우수에 젖은 음색은 가을 분위기와 꼭 맞아떨어져서 큰 감동을 선사했다. 만약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상상력을 발휘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듯 하다. 그의 미간에 근심이 가득찬 표정이 번지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으리라.


최근에 그를 만난 건 2013년 제50회 대만 금마장(金馬奬) 영화제 때다. 우리 둘 다 시상자로 참여했는데 나는 피아니스트 랑랑(郞朗)과 한 조였고, 그는 장만위와 한 조였다. 시상식이 끝날 무렵 시상자와 수상자 모두 무대 위에 올라와 단체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데뷔 연차에 따라 상석이 배분됐다. 가장 앞줄에는 80~90세의 대선배들이 자리했다. 나는 나이가 적지 않을 뿐더러 데뷔도 일렀기 때문에 두번째 줄에 앉을 자격이 충분했다. 그는 당연히 나보다 뒷줄에 앉아 있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흡사 무술영화를 찍는 것처럼 뒷줄에 있던 후배들이 모두 앞으로 뛰어내려와 줄을 섰다. 정작 이브닝드레스에 하이힐 차림이었던 나는 어떻게 이 계단을 내려갈 것인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 때 누군가 내게 “추샤 누나, 제가 에스코트 할게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 밑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류더화와 장만위, 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쌍의 금동옥녀(金童玉女)인가. 밀려드는 감격도 잠시, 나는 민망함에 “이렇게 마른 두 사람이 괜찮겠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특유의 눈빛으로 “그럼요, 손 이리 주세요”라고 답했다. 이 얼마나 하이틴 로맨스 영화 같은 장면인가. 아마 소녀 팬에게 이런 상황이 펼쳐졌다면 기절했겠지. 나조차도 내가 영화 속에 들어온 것은 아닌가 싶은 착각에 빠졌으니 말이다.


나는 두 사람의 도움 덕에 용감하게 내려왔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앤디뿐만 아니라 장만위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비록 그녀와는 첫 만남이었지만 위기 상황에서 구해준 덕분에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친근감이 느껴졌다. 나는 보도를 통해 그녀가 가수로 전업을 선언한 소식을 접한 터였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음악에 대한 견해를 물었더니 왠걸, 그녀는 나보다 더 신이 나서 음악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두 손을 꽉 잡고 지지를 표했다. 사실 이미 영화계에서 큰 업적을 쌓은 그녀가 모든 걸 내려놓고 신인의 자세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다들 무대에서 내려와 작별인사를 나눌 때 그녀에게 “음악인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그녀가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그녀가 반드시 해낼 거라고 믿는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나의 예상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던 탓이다. 일단 류더화와 장만위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니 모자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두 사람의 놀라운 흡인력이라니! 이번에는 특별히 큰 딸이 그린 그림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원고 마감에 쫓겨 아직 허락을 받진 못했지만 어머니의 날이니 딴지를 걸지는 못할 것이다. 비록 모자관계에 대해 쓰지는 못했지만 우리 사이를 보여주는 또다른 징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천추샤(陳秋霞·진추하)라이언팍슨?파운데이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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