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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미라 여중생 사건 목사 부부에 징역 20년, 15년 선고…검찰 구형보다 높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학생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집 안에 방치해 반미라 상태로 만든 목사 부부에게 법원이 검찰 구형보다 더 높은 중형을 선고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1부(이언학 부장판사)는 20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숨진 여중생의 부친인 목사 이모(47)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계모 백모(40)씨에겐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또 이들 부부에게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20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이들 부부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기소됐다.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및 아동유기·방임 혐의도 적용됐다.

이날 법원이 선고한 형량은 검찰의 구형보다 더 높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9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씨에게 징역 15년, 백씨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이씨와 백씨는 피해자의 친부와 계모로서 딸을 건강하고 올바르게 양육하고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는데 보호는 커녕 양육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딸을 수일에 걸쳐 신체·정신적으로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하고 시신을 방 안에 방치해 더욱 참혹하게 만들었다"며 "죽음과 마주하기에는 너무 이른 12세 소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 준 것으로 무거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도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또 "피고인들이 범죄사실 전부를 인정하고 반성문을 제출하는 등 잘못을 뉘우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딸의 도벽과 거짓말이 학대의 원인이 되었다'며 여전히 책임을 딸에게 전가하고 있어 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인지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이런 참혹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에 경종을 울릴 필요성 등을 종합해 볼 때 엄중한 처벌을 내릴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쑥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선 이씨는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동안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연두색 수의를 입은 백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끔 눈물을 닦기도 했다.

이씨 부부는 지난해 3월 17일 오전 5시30분부터 7시간 동안 부천 집 거실에서 중학교 1학년생인 딸 A양(당시 12세)을 무차별적으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숨진 딸의 시신을 11개월간 집 안에 방치해 미라 상태로 만들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검찰과 경찰 조사에서 시신을 방치한 이유로 "기도하면 딸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에서 양형 이유를 통해 부부의 범죄 사실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꾸짖었다.

법원은 "피고인들은 2012년 여름 딸을 계모의 여동생에게 맡긴 뒤 어떻게 양육을 하는지 관심도 없고 주말에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동안 잠시 만났을 뿐 집으로 데리고 와 잠을 재우거나 피해자의 초등학교 졸업식이나 중학교 입학식 등 학교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었다"며 "폭행으로 얼굴이 창백해지며 뒤로 쓰러진 딸에게 '쇼를 한다'고 계속 학대하고, 영하의 기온에 외투도 걸치지 못한 아이를 밖으로 내쫓는 등 폭행의 강도도 체벌을 넘어선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언학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읽으면서도 목이 메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 판사는 "피해자의 사인은 허혈성 또는 저혈량성 쇼크로 추정된다. 왜소한 체격에 전날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추운 날 밖에 돌아다니다가 지속적인 외부적 충격으로 쇼크가 발생해 사망하게 된 것"이라며 "'딸이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믿음에 경찰 등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피고인들의 변명은 그릇된 신앙심에 기초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딸이 남의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을 한다고 학대하고 폭행한 피고인들이 딸의 사망 이후 '아이가 가출했다'며 거짓으로 실종신고를 하고 학교에 취학유예신청을 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부부는 딸이 교회 헌금을 훔쳤다고 하지만 근거 및 돈의 소재가 밝혀지지 않았고 설령 딸에게 도벽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무관심한 부모의 탓이다. 부모의 관심을 받고자 아이가 보낸 신호일 수도 있다"며 "아동학대범죄는 피해 아동 개인에 대한 침해이자 나아가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선고 마지막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던 A양을 위한 편지를 읽기도 했다.

"A야!. 너는 이제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었구나. 우리가 너를 아픔과 고통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부디 하늘나라에서 사랑하고 보고픈 엄마를 만나 행복하길 바라. 그리고 이 땅에서 더 이상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밝게 지켜봐 주렴."

부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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