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삼실봉벽화와 비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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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북영풍군순여면 벽화고분의 발견은 삼국시대 신나에도 고구려에 못지 않은 화려한 무덤 벽화가 있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지금까지 통일신라 이전의 삼국시대 벽화고분은 주로 고구려에서 널리 유행했고 백제에 일부 부내된 것으로 확인해 왔다.
그러나 지난 71년. 이대박물관발굴단이 이번 발견된 벽화고분 인근(2㎞)에서 「을묘」 양각 명문의 신라 벽화고분 「순흥 어숙묘」를 발굴함으로써 신라에도 고분 벽화가 부내됐었음이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숙묘의 「을묘」명문은 595년 (진평왕17년)으로 추정됐고 6세기말의 신라고분이라는 고고학계의 확인을 거쳐 사적 제238호로 지정했다.
현실 3면의 벽에 인물·동물·연꽃·식물·서조 등의 화려한 입체 채색벽화를 그린 이번 순흥 신라벽화고분도 현재로는 선도 (현실 입구) 벽면에 검은 붓글씨로 써놓은 명문중의 「기미」가 599년(진평왕 21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발견된 순흥벽화고분은 71년 발굴의 순흥 어숙묘와 같은 시기의 신라고분이다.
순흥 벽화고분의 벽화는 아직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지 않은 발견의 단계에서 도굴구멍을 통해 관찰하고 적외선촬영으로 3개 벽면의 그림들을 사진촬영한 것이지만 벽화의 구도와 다양성·화려함 등이 남한에서 현재까지 발굴된 총4기의 고분 벽화들보다 뛰어난 것으로 평가돼 더욱 주목을 모았다.
부장품은 지난해말 도굴된 것으로 추정됐고 인골 이외의 유물은 한 점도 없었다.
벽화고분의 화려한 묘제는 삼국시대 고구려에서부터 백제 신라로 전파돼 내려왔다는 게 고고학계의 정설이다.
따라서 백제나 신라고분들의 벽화는 근본적으로 고구려풍을 띠고 있다.
이번 순흥 신라벽화고분의 서쪽 벽에 그려져 있는 양손에 뱀을 쥔 인물상도 고구려 삼실총 (통청)의 벽화와 같은 구도다.
이밖에 북면의 연꽃이나 동면의 서도그림도 고구려벽화고분에 흔히 나타나 있는 것들이다.
순흥 신라벽화고분에서 확인된 뚜렷한 특징의 하나는 고구려·백제 등의 벽화 고분 연꽃 그림은 꽃잎이 활짝핀 평면구도인데 비해 입체적인 구도의 연봉을 그렸다는 점이다.
벽화고분은 고구려보다도 앞서 가야시대부터 있었다. 벽화고분은 토속신앙의 내세관에서부터 비롯, 고구려에서 불교신앙의 극악관과 윤회사상이 가미되면서 사후에도 불멸하는 영생을 추구한 화려한 묘제의 하나로 발달됐다.
가야벽화고분으로는 지난 67년 발굴된 경북 고령 고아동벽화고분이 있다.
남한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4기의 벽화고분 중 유일한 가야벽화고분인 이 고분의 벽화는 일부 벽면과 천장에 연꽃무늬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정도다.
이밖에 백제벽화고분인 공주송산리 제6호분은 현실 4벽에 청룡·백호·주작·현무의 4신을 그렸고 부여원산리고분은 4신도와 천장에 연꽃 구름무늬를 그렸다.
신라 벽화고분인 순여 어숙묘는 선도와 현실 전면에 인물상 연화문을 그렸고 「을묘년어숙지술우」라는 양각 명문이 연도 벽면에 새겨져있다.
순흥 벽화고분의 수문장이범을 쥐고있는 벽화는 5세기후반의 고구려 고분벽화가 그 전형이어서 연대가 539년이나 479년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순흥벽화고분은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신라 특유묘제인 석실묘로 신라고분임이 확인됐다.
김원룡교수 (서울대·고고학)는 『이번에 발견된 영풍고분벽화는 그 내용과 문화사적 성격으로 보아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고분벽화중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고구려벽화가 어떻게 신나 백제·가야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한국고분벽화의 계보를 밝히는데 이 벽화가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 벽화의 제작연대를 5세기후반 6세기초로 추정했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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