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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앞뒤 앉아 2시간 내내 눈도 안 맞춘 정진석·현기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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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18일 오전 6시40분.



서울 용산에서 KTX를 탄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특실(5호)에 앉았다. 광주에서 열리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15분 후 열차가 광명역에 섰다.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이 탔다. 공교롭게도 그의 예약 좌석은 정 원내대표 바로 앞자리였다.

“앞뒤로 앉은 줄 몰랐다” 똑같이 해명
김태흠 “혁신위·비대위 다시 꾸려야
못 받아들인다면 스스로 물러나라”
정진석, 상경길 돌연 공주서 내려
“당에 내 편 없어 혼자 거취 고심 중”

정 원내대표는 현 수석이 바로 앞자리에 앉는 것을 봤으나 눈도 맞추지 않았다. 현 수석도 인사 없이 자리에 앉아 곧바로 눈을 감았다. 이후 2시간 내내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두 사람은 광주송정역(오전 8시34분)에 내려 각각 역사를 빠져나갔다. 이날 오후 둘은 기자들에게 “앞뒤로 앉아 있었는지 몰랐다”고 똑같이 해명했다.


#. 낮 12시40분 광주송정역.



기념식 참석을 마치고 서울행 KTX를 기다리던 정 원내대표에게 기자들이 “당 상황과 관련해 발표할 게 있느냐”고 묻자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는 게 있겠느냐”고 답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선 “얘기도 좀 하고. 전화할 데도 있고…”라며 말을 흐렸다. 기자들이 “누구랑 상의를 하느냐”고 질문하자 “없다. 난 이 당에 혼자다. 혼자인 거 알고 (친박계가) 이러는 거 아니냐 지금”이라고 말한 뒤 열차에 올랐다.

한 시간 후(오후 1시40분) 그는 서울 대신 지역구인 충남 공주역에서 갑자기 내렸다. 기자들도 황급히 따라 내렸다.

기사 이미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와 현기환 정무수석이 18일 오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각각 참석했다. 정 원내대표는 기념식을 마친 뒤 서울로 올라오지 않고 지역구인 충남 공주로 향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갑자기 왜 내렸나.
“볼일이 좀 있어요. (선친) 산소도 좀 가 봐야 되고요.”
JP(김종필 전 국무총리)한데 조언을 구하나.
“JP가 왜 나와요. 무슨 약방의 감초예요?”

새누리당은 지금 갈림길에 있다. 지난 17일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 출범이 무산되면서 친박계와 비박계는 분당(分黨)까지 거론하며 극한 대결 모드에 돌입했다.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나와 “당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독선적이고 급조된 형태로 혁신위원장(김용태)과 비대위 인선(이혜훈·김세연 등)을 하다 보니까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며 “백지 상태에서 (비대위·혁신위를) 다시 시작하든가, 받아들일 수 없으면 자기가 물러나든가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정 원내대표가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박계 김성태 의원은 라디오에 나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비대위·혁신위 구성안을 ‘그분’(친박)들 재가를 받지 않고 결정한 것이 하차 사유가 된다면 원내지도체제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날 새누리당은 공식적으론 16일째 지도부 공백 상태를 이어 가고 있다. 당 관계자는 “지난 3일 당선된 정 원내대표가 아직 당선자 신분이라 당의 공식 문건은 여전히 원유철 명의로 나간다”며 “어제 전국위 추인을 못 받아 지도부가 부재한 상태”라고 말했다.

‘형식’보다 ‘내용’은 더 심각하다. “분당을 염려할 정도로 현재 상황이 위중한 것은 분명하다”(김성태)는 말이 친박·비박 양쪽에서 나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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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원내대표는 공주에서 기자들에게 “새누리당에 내 편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거취를) 고심하고 있다”며 “하지만 내가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일 오후 서울로 올라가 당 상황을 살피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친박계 한 재선 의원은 “왜 공주까지 내려가 칩거하며 ‘피해자 퍼포먼스’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 있듯이 (싫으면) 직에서 물러나라는 게 우리의 뜻”이라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공주=최선욱 기자, 현일훈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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