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슈추적] “여권은 5·18 함께 노래하고, 야권은 정치적 독점 말아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기사 이미지

‘제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광역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이날 황교안 국무총리와 현기환 정무수석은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앞줄 왼쪽부터 황 총리, 정의화 국회의장,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안철수·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현 수석. [프리랜서 오종찬]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齊唱) 여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18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불과 20분 만에 끝났다.

학계·정계 제언
기념식 상처 남기고 20분 만에 끝나
송호근 “황 총리, 합창 안 한 건 잘못”
유인태 “역사는 있는그대로 봐야”
“본질이 아닌 노래 집착” 지적도

박근혜 대통령은 3년 연속 불참했고, 서로 ‘호남의 적통’이라고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소속 의원 전원을 광주에 집결시키는 세몰이를 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국가보훈처가 결정한 대로 “합창”이라고 사회자가 외치자 기념식장은 둘로 갈라졌다. 유족들과 야당 인사들은 일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반면 박 대통령 대신 참석한 황교안 국무총리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3000여 명의 참석자들은 ‘이념 대결의 상처’만 남은 행사장을 무거운 마음으로 빠져나갔다. 이런 반목과 갈등은 8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갈등의 뿌리는 언제 사라질 수 있을까.

서울대 송호근(사회학) 교수는 “이제 5·18은 정쟁의 장이 아닌 시민권 신장의 장이 돼야 한다”며 “정권에 의한 폭력인 5·18이 줄 수 있는 교훈은 과거에 유린됐던 시민권이 이제는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점검하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지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송 교수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있어야 할 황 총리가 노래를 부르지 않은 건 ‘야당은 신념적으로 틀렸다’는 선언으로 매우 잘못됐다”며 “오히려 집권당은 ‘지금도 알게 모르게 정부가 폭력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한다. 가차없이 비판해 달라’는 메시지를 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야권을 향해선 “광주와 5·18을 정치적으로 독점해선 안 된다”며 “전 국민이 공유해야 할 아픈 역사를 야당이 전유(專有)해 정통성을 얻기 위한 도구로만 쓰다 보니 5·18의 의미를 특정 영역과 지역으로 축소·고립시켰다”고 지적했다.

동국대 박명호(정치학) 교수도 “‘정치적 무임승차’가 5·18의 본래 의미를 퇴색시키고 정쟁을 키웠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여야가 말로만 협치를 내세울 뿐 자신들의 기존 지지층에 공짜로 올라타려는 편협한 정치를 하고 있다”며 “정치는 국민의 공통영역을 확대시키는 게 본질인데 후진적 편가르기가 반복되면서 정치가 사회적 공통영역을 계속 축소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또 “그러다 보니 5·18의 본질과 교훈이 아닌 ‘노래’에만 집착하게 됐다”며 “이제는 정치가 ‘노래 논란’을 놓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민주 민병두 의원은 “민중이 객체가 아닌 주체로 나섰던 5·18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기념곡은 합창이 아닌 제창이 돼야 한다”면서도 “5·18이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주는 화두가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통합·확장임에도 논의가 지나치게 정치화됐다는 점에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여권 인사들 중 드물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른 새누리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의 상징이라 자연스럽게 따라 불렀다”며 “정치가 5·18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미숙과 정치력 부재를 자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신 시절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더민주 유인태 의원은 “야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만을 강조해 산업화의 성과까지 무시해 왔고, 여권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사회 통합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광주=최선욱 기자 thk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