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 옥시 전 대표 등 외국인 임직원 10여 명 곧 줄소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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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의 외국인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오늘 독일인 옥시 재무이사 불러
2010~2012년 대표는 사건 축소 의혹
당시 서울대 교수 e메일 등 확보
검찰 “옥시, 전문가 유해성 경고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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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은 옥시의 대표를 지냈던 존 리(48·미국·사진·구글코리아 사장)와 거라브 제인(47·인도) 등 외국인 임직원 10여 명을 소환조사할 계획이라고 18일 밝혔다.

수사팀 관계자는 “신현우(68·구속) 전 대표 퇴임 이후 경영 전반을 책임진 외국인들을 조사하지 않고는 수사 진도가 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현재 소환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2010년부터 옥시의 재무이사를 맡은 울리히 호스터바흐(독일)와 옥시의 사내 변호사 김모씨를 19일 불러 조사한다. 이 사건과 관련한 첫 외국인 소환조사다.

검찰은 현재 국내에 있는 한국계 미국인 존 리 구글코리아 사장을 우선 소환 대상자로 선정하고 최근 그에 대해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다. 존 리는 신 전 대표 후임으로 2005~2010년 옥시 대표를 지냈다. ‘옥시싹싹 NEW가습기당번’이 연간 평균 36만 병가량 팔리면서 시장점유율 1위(약 60%)였던 시기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1·2등급 피해자 221명 중 177명(사망 70명)이 이 제품을 썼다.

검찰은 신 전 대표와 함께 구속된 옥시연구소 관계자 2명에 대한 조사를 통해 옥시가 살균제 원료(PHMG)의 유해성을 인지할 수 있었던 상태였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존 리가 판매 중단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수사팀은 이번주 내에 존 리 측에 소환을 통보할 계획이다. 2014년 구글코리아 사장에 취임한 존 리는 최근 국제 거래 전문 로펌을 선임했다.

2010~2012년 옥시의 대표였던 거라브 제인은 ▶고의 법인 청산 ▶서울대·호서대 등 외부 실험 보고서 조작 ▶소비자 부작용 호소글 삭제 등 옥시의 사건 축소·은폐 의혹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거라브 제인이 옥시의 의뢰를 받아 제품 유해성에 대한 실험을 한 서울대 조모(구속) 교수와 주고받은 e메일과 서류들을 다수 확보했다. 거라브 제인은 현재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의 싱가포르 본부장을 맡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거라브 제인을 포함해 여러 수사 대상자가 외국에 거주 중이라 소환이 쉽진 않지만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은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세계 최초로 개발(1994년)한 전문가의 유해성 경고를 무시한 단서도 찾아냈다. 검찰에 따르면 SK케미칼(당시 유공)의 ‘가습기메이트’를 개발한 노모씨는 옥시가 제품을 출시하기 전인 2000년 옥시의 선임연구원 최모(구속)씨를 만났다. 이때 노씨는 최씨에게 “PHMG는 가습기메이트의 원료로 사용한 CMIT/MIT와 달리 흡입독성 여부가 검증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최씨는 이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회사에 전달했지만 경영진은 이를 묵살한 것으로 조사됐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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