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씨「입당」…여의 강경 방침 파장|정치부 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태우 민정당대표위원과 이민우 신민당총재의 극비 회동은 하한정국에 심각한 새국면을 몰고 올것 같습니다.
-신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부·여당이 김대중씨의 거취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통고한 만큼 야권이 이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이제 관심이 쏠리고 있어요.
-이번 회담은 내용과 이루어진 경위, 양측의 극도의 보안조치 등 여러모로 극적인 요소가 많아요.
-신민당은 이번 노-이 회담성립 배경에 대해서 5일 홍사덕 대변인을 통해 민정당의 노 대표가 요청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공식 설명했읍니다.
-3일의 상황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이날 낮 두 김씨와 회동한 이총재는 자기와 대통령과의 단독면담, 대통령과 두 김씨와의 3자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말했고, 이어 김동영 총무가 이날하오 이종찬 총무를 만났읍니다.
그전에 여당측의 제의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서 김총무가 이총무에게 이-노 회담을 제의했던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아뭏든 이날 총무접촉에서 이-노 회담의 시간·장소가 정해진 것은 확실합니다.
물론 장소와 시간은 노대표가 정했다는 것입니다.
-신민당측 얘기는 그렇지도 않아요. 이 총재 측은 임시국회가 끝나면서 노대표 측으로부터 여러 차례 골프·식사등의 요청을 받아왔는데 이번에 응한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크게 봐서는 그렇다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번 회동자체만 놓고 보면 이총재의 요청으로 봐야할 대목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여야가 모두 노-이 회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지요.
-야당측은 우선 김대중씨 문제에 관한 정부 여당의 진의확인이 급했던것 같습니다. 김씨가 제헌절 후 신민당 입당여부를 포함한 거취문제를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김씨 문제에 관한 그동안의 정부·여당측의 비공식 신호는 매우 강경했거든요.
-또 야당측은 최근 학원·노사문제에 대처하는 정부의 입장을 강경선회로 보고 이것이 어떤「불길한」조짐이 아닌가 보고 탐색할 필요도 느꼈던 것 같아요.
-여당측으로서는 3당대표회동 등을 추진해온 입장이기 때문에 만나는 것을 회피할 이유가 없었고, 특히 김대중씨 문제에 관한 확고한 입장을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입니다.
-양측은 중앙일보의 특종으로 이 회동이 보도된 뒤에도 하루이상동안 공식부인을 할 정도로 이 회동을 극비에 붙였읍니다.
-4일 미국독립기념일 오찬 리셉션에서 노대표와 이총재를 만났을 때도 계속 부인하더군요. 노 대표는「중앙일보가 헛다리 짚었어」라고 발뺌을 했고 이총재는「그런 일이 없다는데 왜그래」라고 무뚝뚝하게 부인했지요.
-본보의 보도가 나간 후에도 이총재는 목욕탕까지 쫓아가 묻는 기자들에게 계속 부인만 했어요.
-이렇게까지 비밀에 불이고자 했던 것은 은밀한 고위절충을 보장하기 위했던 것인데 사실 엉뚱하게도 처음 얘기가 흘러나온 것은 정부쪽이었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도 이 총재가 5일 총재단회의에서 이 사실을 공개키로 결정한 것은 이미 보도돼 더 이상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고,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속 부인만 하다가는 현 지도부가 여당측과 모종의 거래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오해의 여지를 없애려는 배려가 아니었던가 보입니다.
-과거 박정희-유진산, 박정희-김영삼 회담 등의 예에서 보듯이 여야비밀영수회담이 결과적으로 야당당수에게 정치적 구설수에 오르게 하는 경우가 있었지요.
-여하튼 이총재는 김대중씨에 관한 여당의 강경 방침은 빼버리고 공식발표를 했읍니다.
-여당측은 이총재 발표가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임시국회소집원칙에 합의했다고 한데대해「합의」까지는 하지 않았다는 얘기고, 대통령과의 단독회담·3자회동등에 관해서도 요구한 내용과 톤이 발표와는 많이 달랐다는 주장입니다.
-노대표는 5일 당직자회의를 주재하다가 신민당이 노-이 회담 내용을 공식 발표한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옆방으로 당직자들을 따로 불러 사실을 공개하고 대책을 숙의했읍니다. 이때 일부당직자는「그렇다면 그대로 있을 수 없다」고 분개했으나「야당의 입장을 너무 궁지로 모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견으로 기울어 짚고 넘어가기로만 했죠. 그래서 노대표는 심명보 대변인을 통해「일부 내용이 부분적으로 사실과 다르다」는 것만을 발표케 하고 약속은 약속이니까 우리측은 내용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지요. 신민당의 발표로 보면 이총재가 화동에서 매우 강경한 톤으로 요구하고 노대표가 수세적 경청을 한 것처럼 돼있는데 실은 양자간에 서로 이해를 구하는 입장과 분위기에서 썩 온건한 대화를 했다는게 정설입니다.
-민정당측 얘기로는 노대표가 특유의「포괄적 대화술」로 상대방이 언짢지 않도록 할 얘기는 다했고, 특히 김대중씨의 사면·복권, 신민입당에 대한 민정당의 판단이 어떤 것인가를 매우 강경한 내용이지만 아주 완곡하게 얘기했으며 이총재가 이를 납득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노대표는 김씨의 사면·복권과 관련된 당 내외의 여러분위기를 얘기했을 것이고, 이총재는「경륜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3자 회담을 제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총재의 단독면담요청에 대해 노대표는 전당대회이전에 만나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을 터이니 전당대회 이후로 미루어 달라고 요청했답니다.
-신민당측도 전당대회 이전에 단독면담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진작부터 판단하고 있었읍니다. 며칠전 이총재 자신도 가능성이 없음을 비추기도 했어요.
-민정당측은 그전부터 김대중씨의「자중」을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졌던 만큼 이총재가 대통령과의 단독회담 요청을 위해 노대표를 만났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지난 6월 하순 유성에 휴양차 내려갔던 김대중씨는 자신의 비서실 차장이기도한 신민당 송천영 의원의 간청으로 송 의원의 지구당사무실로 찾아가 지구당 당원 5백여명 앞에서 연설을 한적이 있는데 아마 이를 두고 정부·여당측은 김씨가 정당관여를 했다고 보지 않았던가 싶어요. 또 김씨의 신민당 입당설이 퍼지면서 여는 여대로 김씨 문제에 관한 단안을 내릴 필요를 느꼈고, 야는 야대로「보장」을 받을 필요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에요.
-김대중씨는 5일 노-이 단독회담에 대해 김동영 총무로부터 보고를 받은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내가 다시 들어가면 교도소 안에서 코피나 마실 수 있도록 캠페인이나 벌여달라」고 재수감 가능성과 관련된 우울한 농담을 하더군요.
-김대중씨는 4일하오 정부·여당의 강경 방침을 이미 알고 있었던것 같아요. 5일 상오 민추협에서 김씨를 만난 최형우 간사장은「그렇게 침통한 표정은 처음 봤다」고 했어요.
-회담 결과에 관해 이총재는「이런 정도의 얘기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도움이 됐다」며「비밀이 유지됐으면 두 가지쯤 작품이 나올 수 있었는데…」하고 아쉬움을 표명하더군요.
-김 총무는 5일하오 국회 총무실에 나와「산통이 다깨졌다」며 낭패스러운 표정이었읍니다.
-어쨌든 이제 김대중씨의 신민당 입당은 어렵게 된것으로 보입니다. 정당법상 엄연히 선거권이 없는 사람은 고문추대도 할수 없게 돼있잖아요.
이런 사태가 신민당 전당대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합니다.
-김대중씨의 입당이 안되는 이상 김영삼씨도 입당을 않겠죠. 그렇다면「신민당과 당외의 두 김씨」라는 관계는 변함이 없겠군요.
-전당대회에는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동교동측이 사면·복권을 제대로 추진 못했다고 당주류인 상도동과 이총재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되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이총재 재추대에 소극적이 되거나 자파 대의원이 딴 계파지지로 넘어가는 것을 방관할 가능성도 예견할수 있죠.
-여야관계에도 영향이 있을것 같아요. 만일 김대중씨가 제헌절이 지나 신민당 입당을 선언해 버리면 정국은 급격히 격류에 휘말리게 될 것이고 정부는 김씨의 재수감도 불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민정당 안에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정치의 장내수렴을 외쳐왔고 그 발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논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이처럼 강경한 방침이 나온 배경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읍니다.
정부로서는 대외교섭에 있어서나 대외적으로 정권의 안정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고 사면 ·복권문제에 관해 집권층 내부에 강경론이 다수라는 얘기죠.
-결국 집권세력이 김씨에게 갖는 여러 가지「불신」이 문제입니다.
-곧 있을 두 김씨의 회동과 오는 10일 있을 이총재·두 김씨의 3자회동의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야권의 대응여하에 따라서는 정국이 어렵게 돌아갈 가능성도 있읍니다.
-다만 이렇게라도 여야대표가 만나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한번 만났으니 이런 만남이 자주 있을 수 있게됐다는 점에서 이번 이-노 회담의 의의가 있읍니다. <정리=이재학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