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불화 피해자는 시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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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제 한국 가족에서 고부간 갈등의 희생자는 며느리이기보다 시어머니다. 한국의 가족은 구조적인 안정성은 높은 편이나 가족별거·폭력·혼외관계등을 통한 심리적 해체현상은 높고, 부부간의 정서적 유대감도 약하다. 핵가족하의 극단화한 가족이기주의는 부동산투기·불법과외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따라서 한국가족은 긴밀한 유대속에 개인의 가치와 존엄성을 유지케하고, 가족이익이 사회속에 보편타당성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러한 내용은 『현대사회와 가족』을 주제로 5∼6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아산 사회복지재단 주최의 제7회 복지사회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것이다.
사실상 지난 20여년간 한국사회는 전통농경사회에서 현대의 산업기술사회로 급속하고 엄청난 변화를 겪으면서 가족형태나 가치관등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가부장적 대가족에서 부부중심 핵가족으로의 변화는 사회발전에 활력을 준다는 긍정적 측면 외에 노인문제, 청소년문제, 고부간에 달라진 양상의 갈등, 극도의 가족이기주의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던지고 있다고 고병익 교수(한림대·역사학)는 지적했다.
현대가족의 문제를 도시중산층으로 좁혀 진단한 최신덕교수(이화여대·사회학)는 크게 부모·자녀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으로 요약했다. 부모의 가족주의·권위주의는 자녀의 개인주의·평등적 태도와 양극적 갈등을 빚고, 부부간에는 역할수행에 대한 사회의 불평등한 가치부여가 문제된다는 것이다. 일찍 단산한 할일없는 중년부인의 문제도 크게 대두되고 있다.
한남제교수(경북대·사회학)는 한국 가족의 뿌리깊은 고부갈등은 전통적인 시어머니의 지배적 위치와 며느리의 종속적 위치가 크게 달라져 오늘날에는 며느리의 독단적 가사운영과 시부모의 세력 약화로 시어머니가 희생자인 경우가 많다고 발표.
한편 이동원교수(이화여대·사회학)는 한국 사회의 불안정성은 가정의 불안정성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하면서 오늘의 한국 가족은 겉은 단단하나 속은 텅빈 조개껍질 가족이거나 조그마한 위기에도 대응능력이 없는 위기 경향적 가족이 많다고 진단.
조혜정교수(연세대·인류학)는 『믿을건 식구뿐』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 가족은 똘똘 뭉쳐야한다』는 6·25등 역사적 혼란기에 형성된 피난민 문화의식이 오늘날에는 극도의 가족이기주의로 변질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산업화에 따른 가정과 사회의 명백한 분리는 종래 농경사회에서의 가정이 가졌던 경제적 생산단위로의 기능을 상실케 하고 가정을 개별적인 사유공간, 비정한 사회의 안식처, 주관적인 삶의 실현이 가능한 유일한 피난처로 남게 했다.
즉, 가정주의와 집단적 가족주의가 결합된 상태에서 주부는 가정이라는 굳건한 보루를 지키는 주역으로 가족집단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경쟁에 활발히 참여, 부동산투기 등의 부업과 치맛바람등 사회문제를 빚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의 이익과 사회의 보편 타당한 가치를 일치시키는 가족윤리를 확립하는 일, 중년주부들이 보람있는 삶을 추구함에 있어 그 가치기준을 「나」중심에서 「사회」중심으로 바꾸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되었다.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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