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기자의맛따라기] 한식 뷔페 '큰마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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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떠오르는 저녁이면/개들도 고향의 누나가 보고 싶다/개밥바라기별 유난히 빛나는 새벽이면/개들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다" (정호승 시인의 '개밥바라기별')

시인은 별을 보며 개의 마음을 읽는다. 실은 시인의 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그 서정이 독자의 심금에 닿아 한 소리로 울리면 시는 새 생명을 얻는다.

시를 읽고 있는데 텔레비전에 낯익은 사람이 나온다. 사람들 사이에서 친구를 찾아내고 추억담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주인공은 가수 태진아씨. 몇십 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너 나한테 밥 많이 줬지. 그래, 밥을 많이 줬어"라고 절규처럼 외쳤다. 그러곤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1960년대 초의 일인 듯했다. 1인당 국민소득(GNI)100달러를 겨우 넘겼을 때다. 국민은 배고픔에 허덕였다. 지난해 GNI(추정)가 1만6000달러이니 요즘 세대엔 그 절규와 눈물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그런 광경을 보자니 저녁식사의 추억이 떠올랐다.

농촌에선 들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밥을 차리면 밤이 이슥하다. 춥지 않은 계절엔 온 가족이 마루에 모여 저녁을 먹는다. 누구나 배가 고프던 시절 그 늦은 저녁식사는 얼마나 달고 맛났을까. 마당에선 개 한 마리가 '내 밥은 언제 주나' 고개를 주억거린다. 서산 마루에는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하나 뜬다. 개밥바라기별이다. 개밥바라기별은 금성의 다른 이름이다. 지구에서 볼 때 해와 달 다음으로 밝다. 밝고 아름다워 서양에서는 비너스라 부른다. 해진 뒤 서쪽 하늘에 나타나 3시간쯤 뒤에 사라진다. 해뜨기 3시간 전쯤엔 동쪽 하늘에 뜬다. 이때 이름은 샛별이다. 새별(새로운 별)과는 다르다. 동풍을 샛바람이라 하듯 날이 새는 쪽에서 뜨는 별, 샛별이다.

온 가족이 마루에서 나누던 저녁식사의 추억이 살아나는 한식집이 있다. 이름도 '큰마루'다. 원래는 한정식집이었다. 한정식 손님이 많지 않은 점심시간에 식당을 놀리기 아까워 뷔페를 시작했다. 미끼상품으로 활용하자는 계산이었다. 전략은 적중했다. 손님을 끌어 모으는 효자상품이 됐다. 상차림을 보면 성공의 이유가 보인다. 후식까지 25~30가지가 차려진다. 우선 밥이 세 가지다. 흰밥.흑미영양밥.보리밥. 무치고 볶은 나물이 열 가지, 네 가지 쌈 야채와 풋고추, 두 가지 쌈장, 젓갈과 생선 하나씩, 잡채, 3색전, 깨죽과 찐 고구마, 나박김치와 배추김치, 야채.마카로니 샐러드, 된장국과 잔치국수, 과일, 숭늉에 수정과, 커피까지…. 그릇은 큰 접시와 양푼이 함께 준비돼 있다. 모두 신선한 재료로 아침에 준비한 음식인데 간은 심심하고 맛은 부드럽다. 화학조미료는 최대한 자제했다. 그러고도 6000원, 놀라운 가격이다.

한정식은 점심과 저녁의 상차림과 값이 다른 인사동과 달리 낮.밤 똑같다. 10가지(1만5000원), 15가지(2만5000원), 18가지(3만5000원)요리가 코스로 나온다. 특찬이 곁들여지는 5만원짜리도 있다. 음식은 인사동보다 약간 모던하다. 음식 따라 바뀌는 그릇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별 주문해 만들었다고 한다.

인테리어도 갤러리를 연상할 만큼 구석구석 정성을 기울인 태가 역력하다. 화장실 세면대는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을 자극한다.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 교수의 손길이란다. 맛도 품격도 가격도 가족모임이나 외국손님 접대에 맞춤하다.

이택희 기자

*** 큰마루

■ 위치:서울 강서구 화곡1동 902-3 화곡사거리 KT지사(옛 화곡전화국) 맞은편 골목 안 지하철 5호선 까치산역 3번 출구에서 경인고속도 방향 약 300m

■ 전화:02-2608-2962~3

■ 메뉴:점심 나물 뷔페(6000원), 한정식 4가지(1만5000~5만원)

■ 휴일:큰 명절만 쉼

■ 영업시간:오전 11시30분~오후 3시, 오후 5~10시

■ 좌석수:홀 100석(마루형 26석), 별실 40석

■ 주차: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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