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사기대출' 박홍석 모뉴엘대표 2심서 감형…징역 1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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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 수출입 대금을 부풀려 3조원대의 사기대출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가전업체 모뉴엘 박홍석(54) 대표가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가 인정돼 징역 8년을 감형받았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천대엽)는 17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8개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벌금은 1억원으로 1심과 같았지만 추징금은 361억8100만원에서 357억6564만원으로 일부 줄여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 대표의 수조원대 허위 대출이 개인적인 용도로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회사 운영과 대출금 상환 등을 목적으로 사용된 점을 주된 감형 사유로 삼았다.

재판부는 먼저 “박 대표의 반복적인 은행 대출금 편취(사기) 범행은 일명 돌려막기 차원에서 회전거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며 “모뉴엘 회사 자체가 조직적ㆍ계획적 사기 범행을 위해 설립된 회사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기 범행으로 상환되지 않은 돈이 5400억 여원으로 거액이고 허위 물품대금 채권 등을 이용한 반복적 대출금 편취 범죄는 무역보험 및 수출금융제도의 신뢰와 안정을 깨트려 중형을 선고해야 할 사안임은 분명하다”고 지적하면서도 “그중 5200억여원이 직원의 급여와 관리비·개발비·광고비 등에 쓰이는 등 회사 자체 소요에 귀속 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박 대표가 개인 용도로 쓴 금액은 미국 저택 구입비 5억5000여만원 등에 불과하고 회사 직원들도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도 ‘편취 금액이 박 대표의 개인적인 치부를 위해서만 사용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봤다.

검찰에 조사에 따르면 모뉴엘은 앞선 2007년부터 2014년까지 홈시어터 컴퓨터(HTPC) 가격을 부풀려 허위 수출하고 수출대금 채권을 판매하는 등 수법으로 시중은행 10곳에서 3조4000억원을 불법 대출했다. 박 대표는 외환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해외계좌를 통해 2조8000여 억원을 입출금하고, 국내은행에서 대출받은 자금 361억원을 홍콩의 페이퍼컴퍼니 계좌를 통해 국외로 도피시키는 등의 혐의도 받았다.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자본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금융시스템의 신뢰를 심각히 훼손했다”며 경제 관련 범죄 역대 최고 수준인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박 대표가 키운 모뉴엘은 ‘2013년 매출 1조2737억원, 로봇청소기 국내 1위 기업’으로 알려졌으나 천문학적인 사기대출 등 논란에 휘말려 결국 2014년 12월 파산했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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