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추적] 의원들 "기업 기부 허용" 44% "금지" 3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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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기업체 임원인 고교 동창을 찾아가 '후원금 좀 내라'고 졸랐어요. 처음에는 '주변에 손 벌리는 사람이 많아 내 이름으로 내기 어렵다'며 거절하더군요. 그래도 계속 하소연하자 '그럼 아내 이름으로 500만원을 내겠다'고 마지못해 승낙하더군요."

한 초선 의원(열린우리당)의 얘기다. 현재 정치자금법은 기업.단체 명의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고 있다. 기업체 임원이 후원금을 내려면 개인 돈과 본인 이름으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돈을 내려는 사람도 줄고 돈을 낼 때도 다른 이름을 빌리는 등의 편법(차명 기부)이 늘고 있다. 본지가 실상을 추적 보도한 '얼굴 없는 고액 후원자'문제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본지의 설문조사 결과 국회의원의 70%가 후원금 모금한도(연간 1억5000만원)를 올리는 데 반대했다.

하지만 법인.단체 기부와 정치후원금 모금 집회의 허용 여부 등 모금 방식에 대해서는 찬반이 맞섰다.

◆ 기업 기부 '당장 허용'에는 반대 많아=본지가 의원 205명에게 물어본 결과 43.5%가 "당장 법인.단체의 기부를 허용하자"는 의견을 보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개인 기부 한도(500만원)까지 허용하자는 의견(31%)이 많았다. 반면 "계속 금지해야 한다"가 39%, "원칙적으로 허용해야 하지만 법을 고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당분간 금지해야 한다'는 중도 의견은 17.5%였다.

설문대로라면 법인.단체의 기부를 허용하자는 데 원칙적으로 찬성한 의견이 61%인 셈이다. 다만 올해 당장 법인.단체의 기부를 풀자는 데는 반대 의견(56.5%)이 우세했다.

법인.단체, 특히 기업의 기부를 풀어줄 경우 과거와 같은 정경유착이 생겨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은"로비에 악용될까 걱정된다면 모금 한도를 300만원, 아니면 100만원까지 낮추자"며 "그 정도면 로비자금으로 보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했다. 반면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은 "지역구민 1500명에게 10만원씩만 거둬도 한도를 채울 수 있다. 지역구 의원이 그 정도도 못 모은다면 문제 아니냐"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계속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31.5%)보다 당장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50%)이 많았다. 반면 한나라당은 반대(42.3%)가 찬성(40.2%)보다 우세했다. 민노당의 경우 응답자 9명 중 8명이 계속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 대한상의 "기부 제한 일부 풀어야"=대한상공회의소(이하 상의) 고위 관계자는 "2007년 대선 때에도 누군가 총대를 메고 기업에 돈을 요구할 텐데, 기업 입장에선 이를 받아들이면 불법, 안 받아들이면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차떼기 말고 어떤 기상천외한 수법이 나타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서 상의는 대선이 있는 해에는 기업.단체의 기부를 허용하자는 입장에 있다. 다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부한도를 제한(5000만원 수준)하고 경제단체나 선관위에 기탁하는 간접 기부방식을 도입하자고 한다.

같은 경제단체지만 전경련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전경련 이승철 상무는 "기업의 기부를 허용하면 불법적인 요구가 이어져 경영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도 "이미 법정 대선 비용(350억원)이 정해져 있고 대부분 국고지원이 되는데, 기업이 돈을 내게 하자는 것은 정치권이 불법 선거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받겠다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 재선이 초선보다 '모금파티' 반대=초선인 열린우리당 강기정 의원은 지난해 모금한도 가까이 정치후원금을 모아 동료 의원의 부러움을 샀다. 주위에 전화를 걸어 "10만원을 내면 전액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고 설득해 소액 기부를 무더기로 받아낸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강 의원은 석 달가량을 후원금 모금에 집중해야 했다. 돈을 모으려면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후원 집회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해 초 개정된 정치자금법은 모금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본지의 의원 여론조사에선 찬성 의견(44.5%)보다 반대(54%)가 더 많았다. 그러나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은 "미국은 정치인들이 200달러, 500달러짜리 티켓을 팔면서 디너 행사를 한다"며 "의원회관 식당에서 20만원짜리 티켓을 파는 형식의 소박한 후원회는 허용해도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회 형태의 후원회를 치러본 재선 이상 의원은 반대 의견이 많았다. 재선 이상 의원은 61.4%, 초선 의원은 50%가 반대했다. 한 중진 의원은 "모금 집회가 동원 정치를 부활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당별로는 민노당의 경우 응답자 전원이 반대했다. 한나라당에서는 60.8%의 반대가 나왔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절반이 넘는 54.9%가 집회 허용을 지지했다.

◆ 탐사기획팀 = 정선구 (차장).강민석, 김성탁.정효식.민동기.임미진 기자, 신창운 여론조사전문위원 제보 =, 02-751-5644, 5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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