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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진의를 의심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80여일의 준비끝에 일본정부가 25일 확정한 이른바 시장개방 「액션·프로그램」(실천계획)은 한마디로 일본의 숨은 진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시험지의 반응과도 같다.결논부터 말하면 일본은 근본적으로 자국시장을 개방할 의사가 없다는 실천적 선언을 하고있는 인상이다.
더구나 그런 의사는 한국을 향해서 보다 큰 목소리로 전달하고있는것 같아 부쾌하기까지 하다.「나까소네」 일본수상은 지난 4윌2일 대외무역그래프까지 들고 TV앞에 나와 일본시장개방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겠다고 세계를 향해 공약했었다.
이 공약의 결과로 나타난 대한무역 관세인하 조치는 체면치레에 그쳤을뿐 실속있는 내용이 없다.
가령 우리가 그동안 꾸준히 요구해온 29개 공산품의 관세인하는 17개, 30개 농수산품은 겨우 7개품목에 그치고 말았다. 우리요구의40%수준이다.
이것은 각국의 요구사항 반영률인 60%수준에도 못미친다. 「한일경제협력」이란 말은 일본엔 얼마나 허황된 미사려구인가를 거듭 엿볼수있다.
일본정부는 지난4월9일 「대외경제문제 자문위보고서」 에서 『공업제품의 관세율을 선진국과 똑같이 제로%까지 내리겠다』 고 약속했었다.
이 약속은 아직 에코도 사라지기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동안 우리의 대일적자는 그들의 보호장벽이 쌓아올린 결과나 다름이 없다. 다시말해 법규와 절차등 온갖 수입억제장치가 지난1년간 30억달러, 그리고 수교이래 20년간 무려 3백억달러의 대한흑자를 기록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38개에 이르는 각종 억제장치를 교묘히 깔아놓은 그들이 이같은 지뇌밭을 제거치 않고 입으로만. 시장개방이니, 관세인하니 하는것부터 논리의 모순이다.
일본의 진의를 짐작할수 있게하는 자료들은 얼마든지 있다. 가령일본은 3%의 평균관세율을 지키면서 유독 우리의 관심품목에 7%를 적용시키는 까닭은 무엇인가. 철유류는 왜 10∼32%라는 어마어마한 관세를 물어야하며 대일주력품목인 오징어와 청어알은 무슨 근거로 높은 관세에 묶여있어야 하는가.
관세의 차등은 그렇다치고 수입쿼터제로부터 행정지도와 수입검사제에 이르는 온갖 비관세 장벽도 문제다. 우리의 유망품목이다 싶으면 검사를 통해 「불합격」판정을 내리기 일쑤며,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낄때엔 쿼터로 묶어둔다.
일본은 또 대한기술이전에서도 고의적인 방해와 지연을 일삼는다. 현재 22건의 기술이전을 추진하면서 그러나 「수출은 불가능하다」 는조건을 내세우는것이 그들의 대한자세다. 나아가 우리의 최대시장인미국에서, 그것도 우리의 관심품목만을 골라 덤핑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대한전략은 더욱 자명해진다.
우리는 그동안 일본이 7차례나 시장개방을 외쳤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잘 모른다.
정치도의로 보아서도 일본은 자유세계에 보답한것이 별로 없다. 세계최대의 흑자국가, 또는 제2의 경제대국으로 일컬어지는 일본의 경제는 우리가 그들의 뒷마당을 지켜줌으로써 이루어진 결과나마찬가지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군사비가 GNP의 6%에 이르며 대부분 서방국들이 거의 이같은 수준을 지켜올때 일본만은 국방의 무임승차로 그들의 경제력을 강화할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의 할바는 더욱 분명해진다.
일본은 지섭말절의 작은 문제로 마치 한국과 자유세계에 큰 은전이나 베푸는듯이 광고할것이 아니라, 전정으로 자유우방으로서 협력하고 공동의 번영을 도모한다는 성의와 진심의 노력을 보여주어야 마땅하다.
근본은 외면한채 사소한 작은 일들만의 액션 프로그램은 고작 숫자놀이에 불과하다.
일본이 자유세계를 향해 지금 이순간에 할일은 성의와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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