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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최저임금에 대한 회의적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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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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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소설가

지난 4·13 총선에서도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반영하는 민중주의적 공약들이 두드러졌다. 가장 해로운 공약은 아마도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겠다는 공약일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이 6000원가량인데,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20대 국회 임기 안에 각기 9000원과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최저임금이 4년 안에 50% 넘게 오르면 충격이 클 터이다. 조만간 터질 시한폭탄인 셈이다. 민중주의를 따르는 의원 한 사람의 고집으로 막판에 변형된 면세점법 개정에서 이런 시한폭탄의 위력은 이미 증명되었다.

최저임금은 기업이 종업원들에게 지불하는 임금의 최저 수준을 규정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소득을 높이려는 제도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는 노동자들이 어떤 가격 이하로는 자신들의 노동을 팔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기꺼이 고를 한계적 일자리들은 적지 않고, 나름으로 사회에 공헌한다. 최저임금이 시행되면 그런 일자리들은 사라지거나 기계가 대신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당장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일자리를 지닌 사람들은 소득이 높아진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일자리를 유지한 사람들의 소득을 높인다는 얘기다.

최저임금의 근본적 문제는 하나의 적절한 임금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동 시장은 하나의 동질적 시장이 아니라 사정이 서로 다른 하위 시장들로 잘게 나뉜다. 따라서 단일 최저임금은 경제에 거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주 수준의 최저임금은 고용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연방 수준의 최저임금은 부정적 영향이 뚜렷하다. 푸에르토리코의 극심한 불황과 파산에 연방 수준의 최저임금이 큰 몫을 했다는 분석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최저임금은 열악한 작업장들을 막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9세기 말엽부터 도입되었다. 그래서 주로 여성과 청년의 취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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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년에 사람들의 수명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최저임금은 노인들의 취업에 부정적 영향을 점점 크게 미치고 있다. 노인들은 생산성이 낮고 일 자체에 큰 가치를 두므로 임금이 아주 낮은 일자리들도 반긴다. 최저임금은 이런 일자리들을 아예 없애거나 기계가 대치하도록 만든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아파트 거주자들이 많은 우리 사회에선 아파트 경비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최저임금은 순수한 재앙이다.

경제학 이론에 어긋나고 일상적 경험과도 맞지 않는 최저임금은 1993년 미국에서 나온 자료 덕분에 나름의 이론적 근거를 지니게 되었다. 뉴저지의 식당들이 최저임금의 상승에 반응해 고용을 늘렸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처럼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거스르는 결과를 설명하는 이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논쟁은 자료의 신빙성에서 맴돈다.

지금 다수 경제학자들은 단기적으로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최저임금이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줄인다고 본다. 찬성 진영은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양쪽 다 최저임금이 명목적으로 완만하게 상승한다는 것을 상정한다. 미국의 경우 최저임금이 고용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최저임금 상승이 물가상승보다 높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4년 동안 50% 이상 올리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이미 영세한 기업들이 일손들을 내보내고 아파트 경비는 점점 기계가 대신하니 가파른 상승은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전근대적 임금 구조 때문에 상당수 중소 기업들에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리라는 전망도 있다. 이래저래 가장 큰 피해를 볼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과 노후 대책도 없는 노인들이다.

최저임금이 거칠고 폐해가 크므로 대안들이 나왔다. 이런 대안들은 더 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실업을 초래하지 않으며 비용을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용자들에게만 지우지 않고 널리 분담시킨다. 자연히 가난의 문제에 최저임금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가장 멋진 대안은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다. 이것은 모든 시민들에게 기본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로서, 정부 보조금을 마이너스 소득세로 간주한다. (그래서 음소득세다.) 이 제도는 세금과 복지를 하나의 과표 속에 통합해 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 덕분에 정부 보조를 받는 사람들은 임금이 아주 낮은 일자리도 마다하지 않게 되어 보조금이 부르는 근로의욕저상(disincentive)도 없다. 적절한 최저임금 수준에 관한 논의와 함께 이런 대안의 현실성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면 경제에 덜 부담이 되는 방식으로 가난의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