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환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꽃으로 말해요』라는 말이 있다. 『세이 위드 더 플라워즈』라고 한다. 꽃말에서 비롯된 것 같다. 서양 사람들은 꽃마다 뜻을 담아 백합은「순결」, 장미는「사랑」, 아이리스는 「소식」과 같이 무슨 상징으로 삼는다.
그런 꽃들이 서양엔 꽃가게보다도 생활 주변에 더 많다. 창마다, 뜰마다, 크고 작고, 빈부의 차이 없이 어디서나 꽃을 볼 수 있다.
집집마다 꽃이 다르고, 도시마다 형형색색의 특색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꽃으로 말해요』는 일상의 관용어나 다름없다.
요즘은 우리 주변에서도 꽃을 흔하게 본다. 그 종류도 옛날 같지않아 별의별 꽃이 다 있다. 품종개발과 개량이 여간 눈부시지 않다. 그만큼 꽃의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의식이 족하면 예의를 안다더니, 그 예의란 정서의 윤택함을 두고 하는 말인가. 어느 쪽이든 즐거운 유행이요, 흐뭇한 풍물이다.
그러나 요즘은 꽃이 눈을 즐겁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생명을 기쁘게 하는 일에도 기여하는 것 같다. 서독의 슈피겔잡지에 난 기사를 보면 「레이건」대통령부처는 꽃가루 환약을 24년 동안이나 장복하고 있다.
귀리, 땅콩 버터, 해조류, 그리고 2백60mg의 꽃가루로 빚은 이 환약은 열량이 1백53칼로리쯤 된다고 한다.
74세의「레이건」할아버지가 노익장을 과시하는 원천이 바로 이 꽃가루 환약이라는 것이다. 꽃가루는 종자식물의 수술 꽃밥 속에 들어 있는 웅성의 생식세포다. 학자들이 일찌기 꽃가루 속의 영양소를 분석해 낸 자료도 있다. 각종 비타민(11%), 미너럴 (광물질·5%), 아미노산 (29∼35%), 탄수화물 (30%), 지방 (3∼14%) 등 40여가지.
소문대로 꽃가루가 인간생명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면 필경 그런 영양소들의 하머니 속에서 우러난 에너지일지도 모른다. 신비의 열쇠는 자연이 조제한 배합의 비율 속에 숨어 있는 것도 같다.
꽃가루의 수명을 보면 신비감은 한층 깊어진다. 어떤 꽃의 경우는 꽃가루가 꽃밥을 떠난 지 몇 분 안에 발아력을 잃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꽃의 꽃가루는 1년 이상의 수명을 갖는다. 온도와 습도를 잘 맞추면 그보다 훨씬 수명은 길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뉴욕 타임즈의 건강담당 칼럼니스트「제인·브로디」는 그런 속설을 일소에 붙이고 있다. 실험결과는 아무런 확신도 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레이건」대통령의 건강이라면 차라리 그의 낙천적인 기질, 활달한 운동, 유전적인 생리를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다.
공연한 꽃가루 소문으로 그나마 자태를 보이던 멀쩡한 꽃들이 수난을 당할까 걱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