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8년째 장학금 내놓은 '사랑의 기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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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왼손이 하는 일은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도 있는데 별 것도 아닌 일이 이렇게 알려져 쑥스럽기만 합니다."

전주대의 시외 셔틀버스 기사 7명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의 운전기사'로 불린다. 자신들도 넉넉지 못한 형편이지만 장학금을 학교 측에 기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올해도 지난 10일 3백만원을 이남식 총장에게 전달했다. 李총장은 이 자리에서 "따뜻하고 헌신적으로 학생들을 돌봐준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장학금까지 내주시니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교 측과 계약을 하고 군산.익산.정읍 등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태우는 지입차량 기사들인 이들이 장학금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1996년. 8년 동안 모두 2천여만원을 학교에 내놨다. 장학금을 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술 한잔 덜 먹고 담배 한갑 살 돈을 아껴 불우한 학생들을 돕자는 의견에 서로 의기투합을 한 거죠, 뭐."

이뿐이 아니다. 이들은 학기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선정, 버스비 면제도 해주고 있다. 또 형제나 남매 등이 함께 통학하는 경우에도 할인 혜택을 준다.

또 버스나 택시정류장이 드문 시골의 학생들을 지정된 장소가 아닌 집 근처에 내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코스를 바꿔 학생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차를 모는 '변칙 운행'도 한다.

게다가 이들은 4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맞대며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인생의 스승 역할도 함께 한다. 버릇없이 굴면 따끔하게 혼을 내주기도 하고 때로는 고민에 대해 조언 해주곤 한다.

"학생들을 아들.딸처럼 대하니 스스럼없이 고민을 털어놓아요. 때로는 이성문제 상담도 해주고 결혼문제를 상의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학교의 명물로 자리잡다 보니 이들이 운전하는 버스에 타는 학생들에게는 두 가지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쓰레기는 반드시 봉투에 담아 갖고 가고, 차 안에서는 절대로 술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2~3년간은 학생들을 상대로 매일같이 훈계를 해야 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레 전통이 대물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도 취직을 못해 어깨가 축 처진 학생들을 볼 때 가슴이 가장 아프다는 이들 사랑의 기사들. 이들은 "경기가 활기차게 돌아가 학생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학생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다음 학기부터는 버스 안에서 영어.일어 등 회화테이프를 틀어주자"고 다시 한번 뜻을 모았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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