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부담」알고나 같이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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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병현부총리·김만제재무장관·최창격한은총재 모두 딱하게는 됐다.잘된다싶을땐 다투어 나서더니 이젠모두들 모른단다.
중동에서 국운이 틔었다고 앞장서 설친사람, 빨리 중동에 가지 않는다고 건설회사에 호통친 사람, 생색크게 내며 도장 쾅쾅 찍어준 사람, 너무 조심한다고 은행에 악쓴 사람, 떼돈 벌어 호유한 사람, 중동기사 잘못쓴다고 눈알 부라린 사람, 모두들 어디에 갔는가.
한때 중동 서슬이 얼마나 시퍼렇던지 무슨 중동대책위라는데서 승인만나면 은행은 자동적으로 모든보증을하게 아예 법으로 정해놓았었다. 혹시 딴소리를 하거나 티끌만한 의문이라도 품었다간 발전저해사범으로 호통을 받기 일쑤였다.
국운이 불꽃같이 일어나 프랑스나 영국쯤은 곧 따라잡을 판인데 무슨요망스런 걱겅인고-.
은행들로 말하면 그저 시키는대로 보증서나 떼면 되었다. 신용조사고 뭐고 챙길 틈도 없었다. 얼굴도 보지못하고 백지어음을 끊어준 격이다. 뭐가 답답해서 버티겠는가. 어차피 네것도 내것도 아니니 인심이나 쓰자, 그런 분위기였다.
좋을 땐 모두가 내 공이더니 이젠 모두가 네 탓이란다.
서슬 시퍼렇던 중동대책위는 흔적조차없고 만만한 은행에만 몽땅 짐을지워놓았다. 중동경기기울어져 탈이 난것이 한두해가 아닌데 그동안 줄줄이 높은사람들은 다 무얼했는고. 일찍서둘렀으면 호미로 막을일을 이젠 불도저로도 못막게되었다.
기획원·재무부·건설부·한은모두들 괜찮다고 잘도 미뤄왔다. 『일은 다른사람이 벌였는데 왜 내가 흙탕물에 뛰어들어』 하고 슬술 피하다보니 일이 걷잡을수 없이 커진 것이다.
일은 일대로 안되고,손해는 손해대로 봤지만 보신들은 잘했다.
누가 책임지고 뚝 부질러 하는것이아니라 엉뚱한데 민주적으로 한다고 회의다, 협의다 하다보니 한세월 갈간것이다.
불운하게도 김재무나 최총재는 자리와 때가 도저히 더 떠넘길수 없게 되었다. 이미 일이 터져 싫든,좋든 흙탕물에 뛰어들지 않을수 없게된 것이다. 억울하지만 운수소관이다.
모든 부실은 은행에 모이게 되어있다. 임자없고 끗발없는 은행이니 우선은 편리하다. 골치아픈것,귀찮은것,부담스러운것은 일단 은행으로 넘겨놓고 본다. 요즘 시중은행이 소위 민영화되었다고 하나 마찬가지다. 스스로 판단해서 부도를 낼수도 없고 안맡겠다고 버릴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은행이 휘청거리게 되어 금재무나 최총재가·급하게 된 것이다. 신부총리도 경제팀장으로서 가만 있을수 없다.
은항의 손해가 적기나 한가.
사람들이 놀랄까봐 쉬쉬하고 있는데 한 회사서 2천억∼3천억원씩 손해본것은 약과이고 심한데는 5천억원이 넘는데도 있는 모양이다.
국내에서 손해본것이야 대신 덕본사람이라도 있겠지만 해외에서 손해본것은 아주 갖다버리는 것이니 억울하고 원통하다.
워낙 손해가 크게 났으니 건설회사를 다 팔아넣어도 어림도 없다.
잡을만한 재산도 있을 턱이 없다. 화불단행이라고 해운회사나 종합상사들도 해외에 많이갖다 버렸다.
이것저것 합쳐 은행 부실채권이 5조원을 넘었다느니, 경남기업·남광토건·삼호· 국제상사와 관련된것만도 1조5천억원에 이르니 하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 엄청난 손해때문에 은행이 파산지경에 이르러 한은이 특별융자를 해줄 모양이다.
금재무나 최총재가 더욱 불운한것은 편리한 「8·3조처」 가 없어져 떠들썩하게 특융을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옛날엔「8·3조처」에 의해 은근슬썩 특융을 많이 해줬는데 이젠 꼼짝없이 금통운위규정을 고쳐가며 중인환시리에 해야한다.그것도 운수소관이다. 한은특융이란것은 돈찍어 대주는 것이니 바로 인플레요인이다. 그래서 어느나라나 중앙은행특융을 엄하게 신칙, 신용공황상태가 아니면 발동되지 않는다.
일본중앙은행은 이제까지 특융을 두번했는데 가장 최근에 한 65년의 산일증권파동땐 금융공황을 막기위해 특융을 해줬지만 책임문제로 큰 논란을 빚었다. 한은특융은 한은특융은 기업부실을 국민부담으로 대주는 격이니 함부로 해줘선 안된다. 그러나 그동안 슬금슬금 잘도 해줬다.
이번엔 워낙 덩어리도 크고 급하기도해서 그럴수도 없다.그동안 3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큰소리 탕탕치더니 왜 이 지경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대규모 한은특융까지 하는 사태까지 가고도 경제가 괜찮다니 도시 불가사의다.
한은특융을 해도 통화증발이 안되게 기술적으로 하겠다니 좀 두고볼일이지만 억울한 사람 많을것이다.
돈이 풀려 인플레가 되면 모두 같이부담해야 한다. 음식상은 ,보지도 못했는데 계산은 같이 하자는 격이다. 금재무나 최총재는 지금 계산서 받아들고 돈추렴하는 역할인 것이다.
형편이 계산을 같이 안할수도 없다. 이미 한은에서 많은돈이 나갔으니 고지서를 받은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돈을 내더라도 누구 때문에 얼마나 낼것인지 알고나 내야할것이아닌가.
교과서적방식대로 진상조사, 책임규명, 재발방지보장등이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 엉뚱한 고지서를 다시 발부할 염두를 못내고, 억울하게 대신물 불안도 가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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