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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계 버스기사 아들 칸, 런던 첫 무슬림 시장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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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내 이름은 사디크 칸입니다. 나는 런던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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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크 칸 영국 신임 런던시장이 7일 런던 서더크 대성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성가대의 축하 합창이 끝나자 양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그는 “모든 런던 시민을 위한 행정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런던 AP=뉴시스]

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서더크 성당은 순간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칸(46) 시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짧지만 많은 함의가 담긴 말이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그는 무슬림이다. 그중에서도 파키스탄계다.

46세 노동당 출신, 어머니는 재봉사
부인도 버스기사 딸인 동료 변호사
서더크 성당서 취임…통합 의미
“내가 가진 기회 전 시민도 누릴 것”

파키스탄에서 이민 온 그의 아버지는 25년간 버스기사로 일했고, 어머니는 재봉사였다. 계급이 암암리에 작동하는 영국 사회에서 파키스탄계의 위상이 높다하기 어렵다. 칸 시장은 8남매 중 다섯째다. 칸 시장 스스로 “(임대주택에서 자랄 때) 런던 시장이 될 수 있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서더크는 템스 강 남쪽으로 런던시의 신청사가 있는 곳이면서 한때 쇠락했다가 최근 재빠르게 재개발되고 있는 지역이다. 그 때문에 인종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영국 국교회 소속인 교회에서 첫 무슬림 시장의 취임 선언은 그래서 기회·통합이란 메시지가 담겼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도 “모든 런던 시민을 대표하는 시장으로서 모든 공동체와 시의 각 부분을 대표해 나가겠다”며 “런던에서 예전에 보지 못한 가장 투명하고 부지런하며 소통을 잘하는 시정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나와 우리 가족이 가졌던 기회를 모든 런던 시민도 누릴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유럽 최대 도시인 런던 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노동당 경선에 나설 때만 해도 유력한 후보가 아니었다. 그러나 깜짝 승리를 했다. 본선에서도 보수당의 ‘무슬림공포증’을 자극한 선거전을 이겨냈다. 그저 이겨낸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 승리를 했다. 130만143표를 얻었는데 역대 최다였다. 인디펜던트지는 “어떤 정치인도 누려보지 못한 득표”라며 “지지자들은 그의 미래를 두고 흥분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당 내 차기 주자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다. 전임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시장도 유력 후보로 분류되곤 한다.

영국 BBC 방송은 이런 칸 시장의 여정을 두고 “가능성에 반하는,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전했다. 칸 시장은 15살에 노동당에 가입했다. 당시 교장은 영국 내에선 첫 무슬림 교장이었다. “피부색과 배경은 인생에서 뭔가 이루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고 한다.

칸 시장은 한때 치대에 진학하려고 했으나 “논쟁하길 즐긴다”는 교사의 조언에 따라 법률로 진로를 바꿨다. 94년 노스런던대를 졸업했고 그해 동료 변호사이자 역시 버스기사의 딸인 사디야 아흐메드와 결혼했다. 2005년 하원의원이 됐고 2008년 지방정부·커뮤니티 담당 장관으로 임명된 데 이어 교통부 장관으로도 일했다.

그는 노동당 내에선 상대적으로 온건 노선으로 분류된다. 강경 좌파인 제러미 코빈 당수와는 거리가 있다. 이날 취임식에도 코빈 당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칸 시장은 옵저버 기고를 통해 “손 내밀고 모든 유권자를 끌어안지 않으면 결코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며 “노동당은 지지를 받는 활동가들을 위한 정치가 아닌 (정치적으로 모든 세력을 포용하는) ‘빅 텐트’(big tent)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좌편향의 현 지도부를 향한 일침이란 게 영국 언론들의 해석이다.

한편 칸 시장의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세계에서 답지했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트위터에 “파키스탄 버스 기사의 아들이자 노동자 권리와 인권의 수호자, 이제는 런던시장. 축하한다”라고 썼다. 마누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프랑스를 방문하길 고대한다”고 했다. 파키스탄인민당의 비라왈 부토 자르달리 의장은 “그의 당선을 계기로 영국인들이 파키스탄계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면 한다”고 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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