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당신] “심정지 환자, 에크모 사용하면 20~40% 생명 구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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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교수(왼쪽)과 대니얼 브로디 교수.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때 주목을 받은 의료장비가 있다. ‘에크모(ECMO·체외막형산소화장치)’라는 장비다. 당시 사경을 헤매던 메르스 환자가 이 장비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메르스 치료기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의학계에서는 치료 한계에 부닥쳐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의 생존율을 끌어올리는 치료로 주목 받고 있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기존 치료법으로는 살릴 수 없었던 환자를 살려내고 있다. 사용 범위 확대에 대한 논의도 뜨겁다. 최근 에크모 치료 가능성을 논의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한림대의료원 주최로 열렸다.

이 행사에 참석한 미국 컬럼비아의대 대니얼 브로디(호흡기내과) 교수와 한림대성심병원 김형수(흉부외과) 교수를 만나 에크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에크모는 어떤 장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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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 정맥혈액투석장치(왼쪽)와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는 에크모 장치. [사진=한림대성심병원]

대니얼 브로디(이하 브로디)=멈춘 심장과 폐가 제 기능을 회복할 때까지 몸에 산소를 기계적으로 공급하면서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피를 빼낸 뒤 산소를 주입해 다시 체내로 들여보낸다. 응급 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병원 집중치료실(ICU)에서 인공폐·인공심장처럼 사용된다.

-어떤 질환·환자에게 에크모를 사용하나.

김형수(이하 김)=대표적으로 급성심근경색·심근염·심근병증 등으로 인한 급성심부전뿐 아니라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 심정지 환자에게 사용된다. 최근에는 패혈증에도 사용한다. 과거에는 폐 색전증에 걸리면 무조건 사망하는 걸로 알았는데, 최근에 이를 사용해 사망률을 낮추고 있다. 사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언제부터 본격 도입됐나.

브로디=1971년 폐부전에 처음 사용됐다. 그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에크모는 어떤 상황에 사용하나.

=가이드라인에는 사망률이 80%가 넘을 것으로 예측될 때 사용한다고 돼 있다. 사망률은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 중에는 브로디 교수가 만든 점수체계도 있다. 최근에는 조기에 사용하는 게 결과가 좀 더 나은 것으로 본다.

브로디=김 교수가 말한 것은 세계에크모학회(ELSO) 가이드라인이다. 최적기는 향후 연구를 통해 더 찾아야 한다.

-에크모 치료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브로디=세계적으로 인플루엔자(H1N1)가 유행하면서부터 여러 나라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용 사례도 크게 늘었다. 2009년 유럽에서 발표된 논문(CESAR PEEK GJ)에는 ‘급성호흡곤란증후군 환자에게 에크모를 사용하는 것이 인공호흡기나 약을 사용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다’는 내용이 실렸다. 유효성이 확인된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에크모 치료의 성공률은.

=좌주관상동맥이 막혀 급성심근경색으로 심정지가 온 경우 거의 응급실에서 사망하게 된다. 이 기준으로 구급대원이 충분히 심폐소생술을 했다는 가정 아래 에크모를 사용하면 20~40%는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급성심근경색 중에서 심정지는 오지 않고 쇼크만 온 경우 생존율이 50~75% 정도다. 또 폐를 보조하는 역할로 사용되는 경우 생존율이 40~60%다.

-사용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은.

브로디=세계적으로 에크모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많은 사례에서 생명을 구하고 있다. 긍정적인 것은 많은 병원이 에크모 임상 연구를 통해 전문성을 쌓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외상 환자 치료에도 유용한가.

=외상 환자에게 에크모를 무조건 사용할 순 없다. 여러 진료과와의 협진을 통해 외상 치료가 잘 되고 환자가 생존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사용할 수 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다.

-응급환자 외에도 사용되나.

=기존에 위험하게 했던 부정맥 시술을 에크모를 돌리면서 간단하게 하기도 한다. 학문적으로 사용 근거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향후 보다 많은 근거가 확립될 것이다.

-기억에 남는 에크모 치료 사례가 있다면.

=예전에 호수에 빠진 환자가 있었다. 현장에서는 환자가 사망했다고 보도됐는데 멀쩡하게 퇴원했다. 아마도 에크모가 없었다면 살기 어려웠을 거다. 심장마비로 저산소성 뇌손상이 있긴 했지만 잘 치료됐다. 에크모 환자는 한 명 한 명 우여곡절이 많고 드라마틱하다.

브로디=너무 드라마틱한 사례는 얘기 안 하려고 조심하는 편이다. 기적을 일으키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서다. 아이를 낳고 합병증으로 치명적인 양수색전증이 온 여성 환자가 있었다. 수술 시 심장이 정지됐고 2시간 동안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맥박이 돌아오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는 사용하지 않는데 젊은 여성이라 시도해 보기로 했다. 환자는 심신이 멀쩡하게 회복돼 5일 후 에크모를 제거하고 퇴원했다.

=병원 자체 대응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에크모가 인공폐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까.

브로디=그렇다. 에크모는 초기 버전의 인공폐라고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에크모는 폐 이식이 불가한 환자나 이식할 폐가 없을 때 인공폐로 활용될 것이다.

-에크모 분야에서 한국의 수준은.

브로디=한국에서 에크모 사용 건수는 미국보다 적고, 미국은 또 유럽보다 적다. 하지만 한국은 에크모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에크모를 운용하는 수준이 높다.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2004년 국내에 도입된 이후 사용 사례가 늘기는 했지만 앞으로 질 관리도 필요하다. 의료기관 간 차이를 줄이는 것이다. 환자를 위해서도 상향 평준화는 필요하다.

-에크모 연구·치료에서 개선돼야 할 점은.

=조심스러운 얘기다. 워낙 고가의 치료라서 건강보험 자원 배분 순위에서 밀리곤 한다. 다행히 최근 보건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에크모에 대한 고시를 개정해 권고사항·사용범위 등을 명확히 했다. 앞으로도 이런 논의가 더 필요하다.

-무분별한 사용은 경계해야 할 텐데.

브로디=맞다.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굉장히 고가인 데다 의료진도 부담이 많다. 그래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는 적용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는 에크모를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에크모 연구가 있다면.

브로디=세계적으로 에크모 네트워크 조직이 있다. 에크모 분야에서 질 높은 연구를 촉진하는 조직이다.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다. 급성호흡곤란증후군,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인성쇼크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에크모를 최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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