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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영국 본사, e메일로 가습기 대책 지시해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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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의 본사가 있는 영국에 형사 사법 공조를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은 옥시의 본사 임원들이 한국 법인에 사건과 관련한 각종 증거들을 없애도록 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서울 여의도 옥시 사무실에서 확보한 서버 분석을 통해 영국 본사가 사건이 불거진 2011년 이후 진행 상황을 꾸준히 한국 법인으로부터 보고받고 “사안별 대응 전략을 실행하라”고 지시한 e메일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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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서울대 등 외부 연구기관 실험 의뢰 ▶소비자 부작용 상담 글 삭제 ▶법인 청산 등 이 사건과 관련된 옥시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영국 본사가 관여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사법 공조가) 어떤 형태가 될지는 미지수다. 다음주부터 신현우(68) 전 옥시 대표이사 등 국내 임원들을 소환조사한 뒤 방식과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 공조는 한국 법무부 국제형사과가 공조요청서를 영국 법무부에 전달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이후 영국 법무부는 옥시 본사에서 답변서·증거문서들을 제출받아 한국에 보낸다. 한국 검사가 영국으로 가서 현지 수사기관과 공조 수사를 벌이거나 범죄인 인도 청구를 통해 회사 관계자들을 송환하는 방법도 있다. 현재 검찰에 고발된 옥시의 전·현직 임직원은 29명이며 이 중 15명이 외국인이다.

“사안별 대응 전략 실행” 메일 확보
고발된 옥시 직원 절반이 외국인
검찰, 영국에 수사 공조 요청 예정
환경단체 “판매 허용 정부도 책임”

검찰은 이날 옥시의 마케팅부서 직원 3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제품 출시(2000년) 때부터 표면에 ‘인체에 무해하다’는 글귀를 넣게 된 경위를 캐물었다. 오는 25일에도 같은 부서 직원 3명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이 살균제 과장 광고와 관련해 업체 관계자를 조사하는 건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이후 4년 만이다. 당시 공정위는 ‘제품이 안전하다’고 광고한 옥시 등 4개 살균제 제조업체에 과징금 52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수사팀은 옥시가 2011년 서울대에 의뢰한 흡입독성 평가에서 “살균제에 노출된 임신한 실험 쥐 15마리 중 13마리의 새끼가 배 속에서 죽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폐기된 배경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수사팀은 또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유해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현장검증을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가정에서 제품을 사용했을 때 살균제 원료(PHMG)의 공기 중 농도와 체내 축적 여부 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지난 1월부터 피해자 220여 명을 전수조사해 온 수사팀은 지난 21일 피해자모임 측으로부터 집 2곳을 소개받아 적합성 여부 확인에 나섰다. 수사팀 관계자는 “피해자 구제가 수사의 가장 큰 목표”라며 “피해자들과 수사팀 간 정기 간담회도 이달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옥시는 물론 살균제 판매를 허용한 정부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유가족들과 오는 24일 집단 손해배상 소송 제기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소송인단을 구성할 계획이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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