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록 「총재 제명 전당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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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한당은 지난달 30일 정당사상 처음으로 전당대회에서 총재를 제명하는 또 하나의 진기록을 추가했다.
민한당은 이 나라 정당사에 이미 많은 기록을 남겼다. 타율적 소산의 제1야당이었다는 것부터 우선 그렇고, 제1야당으로서 총선을 겪고 제2야당의 위치로 전락했던 것도 야당사에는 일찌기 없었던 일이다.
또 전당대회에서 선명·강경노선의 제2창당을 선언하면서 새 총재를 뽑고도 5일만에 당이 와해된 대기록(?)을 세웠다.
당선자 35명중 근30명이 탈주하는 패잔병처럼 신민당으로 이적한 것은 전대미문의 기록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당대당의 질서있고 예우받는 통합」을 역설했던 조윤형총재마저 당선자들의 행동에 동조해 백기를 든 것 역시 예사스런 일이 아니었다. 「5일 천하」란 신조어도 그래서 나왔다.
조총재가 32일간의 재임기간에 당직하나 임명 못한 것도 이를테면 진기록 모음집이 있다면 넣어야할 사항이다.
이런 여러가지 기록들에 더해 이번에 총재제명을 위한 임시전당대회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운 것이다.
전·현직의원 23명을 포함한 2백여 대의원들이 볼썽 사납게 의자도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무엇엔가 쫓기는듯 국민의례도 제대로 못한채 30여분만에 대회를 서둘러 끝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못할 진풍경이었다.
그런가 하면 대회의 적법성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그런 대회를 통해 쫓겨나도 하나도 불명예스럽지 않다』며 수수방관한 조총재측의 속내 역시 헤아리기 어려웠다.
양측이 내세우는 명분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제명파는 조총재가 당대 당 통합공약을 위약했기 때문에 공약실천을 위해 새 지도체제를 수립한다는 주장을 펴고있다.
그러나 대회에 참석한 지구당위원장 20여명의 대부분이 지역구에 신민당당선의원을 상대로 갖고 있다는 현실을 보면 그들이 과연 진정 통합을 바라는지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조총재측은 그래서 이들을 고수파로 몰아붙인다.
조총재측 역시 석연치 않은 자세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유야 어떠했든 당권을 장악한 총재라면 법률적 합당이 이루어질 때까지 당을 정비하고 불만자들을 다독거리는 능동적 자세를 보이는게 마땅하다.
특히 조씨가 총선전 범주류파에 불만을 품은 비주류측의 반발이 격심했을 때 『당권파는 늘 비당권파에 40%를 할애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과연 그가 40%할애정신으로 불만세력을 어루만지는 노력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불명예스럽지않다』며 나 몰라라 하는 자세는 비록 다 떨어진 당의 총재라고 하나 취할바 자세가 아닌 것이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제명파의 자금출처가 모호하다는등 갖가지 수수께끼 같은 말이 나돌고 있다.
정치는 보통 「득」과 명분을 찾아 흐른다고 하는데, 바닥에 주저앉아 30여분만에 해낸 전당대회의 제명결의는 그들에게 어떤 「득」과 명분을 주었는지, 우스꽝스럽다는 손가락질을 예상하면서도 그렇게 나가게한 진짜 까닭은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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